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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의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세계 1차대전이 끝난 후 영국 시인 T.S.엘리엇이 쓴 그 유명한 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일절이다. 누구나 봄이 오면 "약동의 계절이니, 희망의 계절이니"하며 찬사를 늘어놓기 마련인데 엘리엇은 이를 거꾸로 해석했다. 4월은 새 생명이 움트는 계절임에도 생뚱맞게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했다. 봄에 대한, 시에 대한 접근방식이 아주 다르다.

나의 마음이 저기압이라서 그런 걸까. 나는 그런 사실을 20년 전, D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경험했다. D아파트에는 꽃나무가 많다. 목련, 라일락, 넝쿨장미 등이 계절을 이어달리며 피고 진다.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가 피고 나면 개나리가 화답을 하고 이내 백목련이 청초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꽃망울을 터트린다. 뜨락에서 꽃대를 뽑아 올리며 꽃잎을 여는 백목련은 고고한 충북선비 같기도 하고, 한복을 잘 차려 입은 조선 여인 같기도 하다. 아마도 그 고품격의 꽃망울에 감동해 충북의 꽃으로 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산수유와 백목련은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동시에 알린다. 뿐만 아니라 이웃도 잘 모르고 사는 회색의 도시공간에 봄내음을 전하면서 무미건조한 도시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색칠해 준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듯 꽃잎은 일주일쯤 지나면 생기를 잃고 아스팔트 바닥으로 한 잎, 두 잎 낙하한다. 차라리 피어나지나 말 것을, 왜 피어나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딴청을 부리며 계절의 저 편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이층 베란다까지 올라오는 백목련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대화하는 것도 잠간이다. 백목련이 웃자라자 아파트 관리인은 전지가위로 가지를 싹둑 잘라내어 난쟁이 꽃을 만들었다. 그 후론 어찌된 일인지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는다. 꽃의 반항이다.

2002년에는 봄눈이 엄청나게 왔다. 농촌의 비닐하우스가 무더기로 나자빠졌고 논둑, 밭둑에서는 여러 대의 차량이 만세를 불렀다. 그때 아파트 뒤뜰에 있는 등나무도 눈 피해를 당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등나무 지주목이 주저앉았다. 지주목을 다시 세우기만 하면 등나무가 다시 살아날 텐데 아파트 관리인은 관리가 귀찮았던지 숫제 등나무를 베어내고 말았다. 그 등나무에서 더위를 식히던 아파트 주민들은 그 멋진 등나무 그늘을 잃었다. 그 등나무 그늘은 사색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해 폭설과 전지는 찬란한 나의 봄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도시의 봄을 앗아가고 말았다.

물이 오른 무심천 벚나무에도 꽃 몽우리가 맺힌다. 며칠 있으면 꽃잎을 틔워낼 것이다. 무심천 벚꽃이 만개하면 상춘객들의 발길이 미어진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는 웃음꽃이 벚꽃보다 더 아름답다. 그러나 도시를 꽃 대궐로 수놓은 이 꽃들도 열흘정도 지나면 꽃잎을 떨군다. 떨어져 봄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이 눈송이 같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거늘, 꽃에 대한 애착을 접어야 할 텐데 이도 쉽지 않다.

3월에 하도 이상한 일이 많아 4월은 좀 평안하길 바랐는데 그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4월의 바다는 육지보다 더 잔인하다. 무정한 바다는 무게 1천200t이나 되는 초계함을 통째로 삼켰고, 침몰된 배, 천안함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병사들을 구하고자 바닷물에 뛰어든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폭파대(UDT) 한주호 준위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침몰 군함의 수색 작업을 돕던 어선 98 금양호가 구조 활동을 벌인 후 인천으로 귀항하다 침몰했다. 청주일대에서 부녀자 납치 연쇄살인범 안남기가 검거됐다. 그는 부녀자를 납치성폭행 한 후 살해하여 차량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택시 영업을 했다고 하니 그 엽기적 행위에 소름이 끼친다. 맑은 도시의 이미지를 살인마가 완전히 구겨놓았다. 옛 말에 '마(魔)는 겹쳐 온다'더니 잇단 비보에 봄의 문턱이 어지럽다.

그전 같으면 상춘 나들이에가 한창일 때다. 봄볕이 따사롭고 연둣빛 새순을 내미는 신록이 아름답지만 서해의 아픔을 생각하니 무슨 죄라도 진 것 같아 성큼 봄나들이를 나서기가 무안하다. 사건으로 얼룩진 올 봄은 꽃이 피는 것조차 서러워 보인다. 6월 지방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서해의 아픔 속에서도 빡빡한 선거 일정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선거사무소를 개설하고 현수막을 내걸며 저마다 국민의 대변자요 상머슴임을 읍소하고 있다.

공천경쟁은 치열해져 가고 상대방 흠집 내기는 봄바람을 타고 곳곳으로 흩어진다. 후보자의 이름과 슬로건을 새긴 명함도 꽃잎처럼 흩어진다. 라일락 향기 같은 구호 속에는 영락없이 명예욕이 숨어있다. 입후보자 중에 자기 생명을 바치면서 국민을 위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출세와 명예욕으로 점철된 선거 가도를 거닐며 또한번 '잔인한 4월'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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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