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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명함첩을 들춰본다.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이 거기에서 튀어 오른다. 3분의1쯤은 기억이 나고 나머지 분들은 상당히 미안하지만 기억에서 지워졌거나 기억의 저편에서 가물거린다. 망각의 강이라고 하는 레테의 강을 건넌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기억의 용량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누렇게 바랜 명함의 주인공이 문득 생각나 안부도 물을 겸, 전화를 해 본다. 10중 8, 9는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거나 "지금 거신 전화는 결번입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명함은 자기를 소개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명함은 생활의 필수품이다. 특히 직장인이라면 명함을 주고받는 일이 매일 되풀이 된다. 상대방이 명함을 건네는데 받기만 하고 자기 명함을 주지 않으면 상당한 결례가 된다. 비즈니스맨에게 있어서 명함은 세일즈의 큰 도구가 된다. 어떻게 본인과 상품을 알려야 하나 고심을 하고 그 고심의 흔적은 명함에 남게 된다. 명함이 톡톡 튀지 않으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명함을 만들고 있다. 직장의 마크를 넣는 것은 기본이다. 대개의 직장에서는 CIP(이미지 통일)작업을 하여 명함을 새기는 추세다. 오래 기억되기 위해선 사진을 넣는 것도 매우 효과적이다. 실제로 불특정 다수인과 명함을 주고받다 보면 며칠 후 명함의 주인공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게다가 휴대폰 번호를 자주 바꾸는 통에 2~3년에 한번 씩은 명함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명함에는 단순히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만 있는 게 아니다. 직장의 슬로건이 적힌 명함도 숱하게 많다. 얼마 전에는 부부 듀엣인 '견우와 직녀'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명함이 특이했다. 전면에는 부부가 다정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실었고 뒷면에는 자신의 히트곡인 '당신뿐이야' '내 남자 내 여자' '가지 말아요' 의 노래방 번호를 적어놓았다. 노래방에서 자신들의 히트곡을 쉽게 입력시키기 위함이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휴대폰 번호와 더불어 팩스, 홈 페이지, e-메일 등을 적어놓는 것도 관례화 되었다. 명함의 재질도 다양하다. 그전에는 흰색 일변도였는데 요즘은 색상도 다양하다. 본인의 취향에 따라 광택, 무광택, 플라스틱 등을 선택하고 글자가 도드라진 형압이나 엠보싱 재질도 선보인다.

필자는 해외 취재에서 명함 때문에 낭패를 당한 적이 여러 번 있다. 한문을 선호해선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함에 한문 사용이 많다. 나도 한문 명함을 만들어 외국인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한문 때문에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었으며 또 한국에는 자신을 소개할 만한 문자가 없는 것으로 오인하는 외국인도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으나 곰곰이 생각하면 참으로 세종대왕에게 석고대죄를 할 만한 일이다. 그 후론 한글로 명함을 바꿨다. 한글 이름을 먼저 넣고 한문은 괄호처리를 했으며 뒷면에는 영문을 넣었다. 글로벌 시대의 명함 제작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명함 문화는 서양의 문화가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1923년에 간행된 오오꾸마 쇼지(大熊春峰)의 청주연혁지를 보면 부록으로 게재된 광고 편에 명함 크기의 광고가 수십 개나 된다. 토목건축 청부업 전출조(前出組)의 전전평태(前田平太), 조선철도주식회사 청주출장소, 청주실업은행지점, 청주식산은행지점, 경성일보 청주지국, 충북무진합자회사, 요리집 북일루(北一樓), 도엽(桃葉), 육석(六石), 은행(銀杏), 대전전기주식회사 청주지사, 조거(鳥居)치과의원 등이 소개되었다. 오늘날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명함을 사용하고 있으니 이제 명함 문화는 하나의 글로벌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의 계절을 맞아 입후보자의 명함이 봄바람에 난무하고 있다. 명함은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이지만 아직도 자신을 알리는 1등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입후보자들은 명함제작에 각별히 신경을 쓰며 자기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사진게재는 물론 자신의 슬로건을 눈에 잘 띄도록 적어 넣고 있다. 명함만으로 입후보자의 모든 것을 알고 능력을 검증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고만고만한 박빙의 승부라면 명함이나 플래카드 등 홍보물 제작이 승부의 관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공을 들여 만든 명함을 유권자들이 잘 간직하며 비교해봐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거 관련모임이나 유세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거리에는 입후보자의 명함이 낙엽처럼 흩어져 나뒹굴기 일쑤다. 입후보자의 열변과 달리 선거에 냉담한 유권자들 상당수가 명함을 받자마자 길거리에 마구 버리고 있다. 명함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입후보자의 분신이기 때문에 이를 쉽게 버리는 것은 입후보자를 무시하는 것이고 거시적으로 보면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만든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현장에서 받은 명함을 바로 버리는 행위는 삼갔으면 한다. 명함의 행간에 새긴 뜻을 깊이 음미하면서 붓 뚜껑을 누를 후보를 차분히 정해나가는 것이 성숙된 시민의 처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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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