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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2.02 18:14:1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고대국가에서 지배자는 철(鐵) 문화를 보유한 집단이었다. 철기 문화 이전에는 청동기 문화만으로도 지배자의 위치에 설 수 있었으나 철기 문화가 등장하면서 청동기 집단은 지배 권력을 철기 집단에게 넘겨준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 중에 하나인 '비파형 동검'은 칼 모양이 악기인 비파처럼 생겼다. 만주 요령성에서 많이 발견되어 '요령 식 동검'이라고도 부른다. 부안 등 우리나라 청동기 유적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유물이다.

한반도에서 '비파형 동검'은 날이 좁고 길은 '세형(細形) 동검'으로 진화해 나간다. 고조선 시대는 세형 동검이 위세를 떨치던 시대다. 이 무기만으로도 국가를 통치할 힘을 지녔던 것이다. 나라에 따라서 다르나 우리나라의 철기 시대는 대략 AD 1세기쯤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의 지혜는 자꾸 발달하여 불의 온도를 1천500도 이상 올리게 되었고 그 온도에서 녹는 철을 생산하게 되었다. 청동보다 훨씬 단단한 철의 생산은 인류생활에 일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쇠 보습, 쇠 낫, 쇠도끼 등 철을 재료로 한 농기구의 생산은 곡식 산출량을 크게 늘렸고 칼, 창, 화살촉 등 무구류(武具類)의 생산은 강력한 지배 집단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고대국가에서 영토다툼은 경작지와 물길(강)및 철 생산지의 확보에 있었다. 심양(瀋陽)이 만주의 거점도시가 된 것은 교통의 요충지와 더불어 중요한 철 생산지였기 때문이다. 충북이 신라, 고구려, 백제의 각축장이 된 것은 남한강, 금강이 흐르는 곡창지대인데다 진천 석장리, 충주 다인철소(多人鐵所) 등 철 생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천 석장리와 이웃한 청주에 철기문화가 발달한 것은 역사의 필연이었다.

신봉동 백제 유물관에 가보면 초기 철기시대에 청주의 철 문화가 어떻게 발달했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청주는 마한(馬韓)의 옛 땅이다. 미호천 가에서 질그릇을 빚으며 살아가던 청동기 집단은 강력한 철기문화를 갖춘 이른 백제의 침공을 받아 백제의 영토로 편입된다. 청주의 철기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고려 광종 13년(962년)에는 무쇠 구리돛대인 용두사지철당간을 세우고 그 아랫부분에 돋움글씨를 새겨놓았다. 사뇌사(思惱寺)출토 금속 유물을 보면 아름답고 정교하기가 이를 데 없다. 금강령, 금강저, 청동 기름말 등은 금속공예의 백미를 이룬다. 운천동 사지 출토 범종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상원사 범종과 더불어 통일신라시대의 3대 범종으로 손꼽힌다. 이처럼 금속공예를 숙성시키다가 인류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발명품을 내놓으니 그게 다름 아닌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다.

충주 다인철소에서는 철을 생산하였다. 고려사에는 '고종 42년(1255년) 주민들이 몽골의 침략을 막아 익안현으로 승격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윤후 장군과 천민집단으로 간주하던 다인철소의 주민들이 충주를 굳게 지켜 몽골군은 괴산 등으로 돌아갔다. 그 다인철소의 유적은 지난 2008년, 중원문화재연구원의 조사로 실체가 밝혀졌다. 현장에서는 야철 유적과 숯가마, 쇠솥, 쇠낫, 쇠도끼 등 철제품이 수습되었다. 충북이 고대로부터 우수한 철기문화를 지녔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는 요즘 '철모르는 사람은 철들러 가자'라는 주제아래 청주 에듀피아 겨울방학 특별전을 열리고 있다. 음성 철 박물관 및 김종근 씨 소장품 협찬을 얻어 우리지역의 철 문화를 재조명하고 있다. 무쇠 솥, 풍구, 재봉틀, 화로, 인두, 모루, 차 난로, 이발기, 등잔, 달구지 바퀴, 얼음 톱, 해머. 엿단쇠 등 쇠를 재료로 하여 만든 생활용품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불과 수십 년 전의 생활 용품들인데 왠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어른에게는 향수를, 아이에게는 생활의 지혜를 터득케 하는 전시회다. 엿장수가 1분에 가위질을 몇 번할까. 그것은 순전히 엿장수 마음대로다. 가위 하나에도 생활의 지혜와 삶의 쓰고 단 맛이 녹아 있다. 예로부터 어른들은 가위 값을 필히 치렀으며 자식이 살림을 나도 가위는 물려주지 않았다. 또 '자(尺)질을 많이 하는 며느리는 써도 가위질 잘하는 며느리는 못 쓴다'고 했다. 한번 행동하기 전, 여러 번 생각하라는 뜻이다.

역사는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정보화시대로 진화한다. 정보화 시대와 우주시대가 열리고 있는 터이지만 철기시대가 마침표를 찍은 것은 아니다. 철기문화는 정보화 시대의 단초를 제공한 인류 문명의 원천이다. 만약 우리 생활주변에서 철기가 없어진다면 우리는 하루생활도 곤란할 것이다. 조상들이 물려준 철 문화를 음미하며 이를 내일을 향한 생활 동력으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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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