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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1.19 17:49:4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집주인과 함께 전세나 사글세를 사는 사람이 문패를 다는데 집주인 문패를 떼어 버리고 자기 문패를 달거나 집주인 문패보다 더 큰 문패를 달면 아주 곤란한 일이 될 것이다. 세입자라고 해서 문패를 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 문패는 어디까지나 주인 문패와 균형감각을 이뤄야 한다.

주인 문패를 폐기하고 세입자의 문패를 크게 다는 넌 센스가 청주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것도 개인 집이 아닌 세계인쇄문화의 메카라고 불리는 청주 흥덕사지에서 이런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청주시 운천동 866에 위치한 흥덕사지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탄생시킨 인쇄문화의 중흥지이다.

만약 흥덕사지가 청주에서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직지'의 가치가 반감될 뿐만 아니라 '직지'를 청주의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내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지난 1985년 10월과 1986년 5월에 이름 모를 절터가 청주대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며 서원부 흥덕사(西原府 興德寺)명 금구(쇠북)와 황통십년(皇統十年)...흥덕사(興德寺)라고 새겨진 청동불발(절에서 사용한 청동 그릇)이 발견됨으로서 이 절터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흥덕사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 이전 까지는 '직지' 간기에 명시된 청주목외 흥덕사(淸州牧外 興德寺)가 어디에 있는 절인지를 전혀 몰랐다. 학계 일각에서는 청원군 강외면에 있는 방죽인 흥덕제(興德堤)가 흥덕사와 어떤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지난 1972년, 재불학자 박병선 박사의 노력으로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직지'를 찾아 세계도서의 해 기념으로 열린 북 페어에 출품하여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유네스코로부터 공인을 받았지만 정작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지는 청주 어디에 있다는 추정만 나돌 뿐, 그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그처럼 흥덕사지는 미로를 헤매다 극적으로 운천동에서 찾아졌다. 비록 택지개발 공사로 절터 절반이 깎여나간 상태였으나 청주대박물관은 이곳에서 흥덕사를 입증하는 청동 금구와 불발을 기적적으로 찾아낸 것이다. 발굴조사 결과 흥덕사는 나말여초(신라말 고려초)의 사찰로 밝혀졌다. 출토 유물로 보아 9세기에 창건하여 15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이 흥덕사지임이 밝혀지자 문화재청은 1986년에 이곳 일대 9만2천588㎡를 사적 제 315호로 지정했다. 사적지로 지정되면 그 범위 안에서 건축물의 신축, 증축 행위가 제한된다. 즉 사적지에서는 건축행위가 여간해서 허락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적지의 경우 개발보다 보존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1992년 사적지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건립할 당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허락을 따내기 위해 여간 고생한 것이 아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어렵게 흥덕사지 안에 세를 얻듯 입주를 한 것이다. '직지'나 청주고인쇄박물관은 흥덕사지가 있으므로 해서 탄생한 파생상품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흥덕사지의 가치가 줄어들고 여기서 파생된 '직지'와 청주고인쇄박물관의 가치만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운천동 현지에 가보면 대로변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이라는 현판만 하늘로 솟아있다. 조형물 옆 안내판에는 두 개의 명칭이 병기되어있는데 사적인 흥덕사지보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더 큰 글씨로 쓰여져 있다. 또 이곳으로 통하는 각종 교통 표지판이나 인쇄홍보물에도 '직지'와 '청주고인쇄박물관' 위주로 표기돼 있다. 주인의 이름은 실종되고 세입자의 문패만 요란하다. 정히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강조하고 싶으면 최소한 원주인인 흥덕사지와 같은 글자 크기로 병기해야 할 것이다.

사실 청주고인쇄박물관이라는 이름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보다는 흥덕사지고인쇄박물관 또는 청주흥덕사지고인쇄박물관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잘 모르는 외지인에게는 청주고등학교인쇄박물관으로 오인할 소지도 다분히 있다. 흥덕사지가 이처럼 찬밥신세가 되는 바람에 고인쇄박물관 위쪽에 있는 흥덕사지가 관광객에게 외면당하는 기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상당수의 관광객이 고인쇄박물관만 둘러보고 흥덕사지를 가보지 않는 예가 흔히 발생한다. 직지가 아들이라면 흥덕사지는 그 훌륭한 아들을 탄생시킨 어머니이다. 직지가 열매라면 흥덕사지는 뿌리이다. 세상 사람들은 달콤한 열매만 취하고 그 열매를 맺게 한 뿌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제는 세입자가 달은 문패를 떼고 원래 주인의 문패를 달아야 한다. 흥덕사지의 주인은 흥덕사지이기 때문이다. 흥덕사지는 냉동창고와 같은 유물의 보관장소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유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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