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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역시 춥고 눈이 와야 제 맛이 난다. 그동안 이상 난동으로 눈 구경을 제대로 못했는데 올해는 30cm가량의 적설량을 보여 겨울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한다. 눈 내리는 골목길에서 팽이치기를 하고 메나리 꽝에서 썰매를 타며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던 유년의 기억이 아물거린다. 초가에 매달린 고드름을 어름 과자인양 아작 아직 깨물어 먹고 눈밭을 누비며 눈싸움을 하던 추억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어린 날의 초상이다. 영화 '러브스토리'에서 두 남녀 주인공 올리버와 제니퍼가 눈밭에서 뒹구는 모습은 아직도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예로부터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눈은 보리밭의 두꺼운 이불이다. 쌓였던 눈은 한꺼번에 녹지 않고 겨울햇빛에 슬슬 몸집을 줄이며 겨울 가뭄을 해소해 준다. 눈은 너무 많이 와도 탈, 안 와도 탈이다. 눈이 전혀 내리지 않으면 우선 겨울 식수 공급에 비상이 걸린다. 그 반대로 이번처럼 일시에 쏟아 부으면 설난(雪亂)을 불러일으킨다. 교통사고, 낙상환자, 출근전쟁, 농작물 피해 등 여러 사회문제가 파생된다. 적설량에 따라 눈은 고운 눈과 미운 눈 사이를 오간다. 스키장은 눈이 오면 흥하고 안 오면 망한다.

선인들은 새해 아침에 눈이 오면 상서로운 기운이 깃든다 하여 서설(瑞雪)이라 했다. 웬만한 눈은 거의 서설로 받아들였다. 첫 눈이 내리면 궁궐에서 왕족사이에 거짓 선물로 눈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었다. 왕과 상왕 간에, 대비와 중전 간에 눈 보따리를 선물하며 겨울의 낭만을 즐겼다. 서설에 대한 일종의 조크로 이날만큼은 거짓 선물이 용납되었던 것이다.

신라 흥덕왕3월에 깊이가 3자나 되는 눈이 왔다. 3자면 1m나 되는 폭설이다. 왕들은 이런 천재지변이 있으면 자신의 부덕(不德)을 꾸짖고 끼니를 줄였다.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에 청주에 큰 눈이 내려 평지에 3자나 쌓였다.(고려사) 이때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주에 머무르고 있었다. 눈이 온 다음날 임금이 탄 수레가 청주를 출발하여 진주(鎭州·진천)으로 향했다. 스노타이어가 없던 시절인데 어떻게 험한 잣 고개를 넘었는지 궁금하다.

눈은 나폴레옹의 야망도, 나치의 야망도 꺾어 버렸다. 러시아의 거친 눈보라를 이겨낼 재간이 없던 것이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이탈리아 병사인 소피아 로렌의 남편은 러시아 전선에서 퇴각을 하다 눈밭에 쓰러졌다. 그는 자신을 구조해준 러시아 여인과 현지에서 결혼했다. 남편을 찾으러 간 소피아 로렌은 눈물을 머금고 홀로 돌아온다. 지난 1974년 겨울, 경북 상주시 화남면 소곡2리에 사는 사산초등학교 2학년생 정재수는 아버지와 함께 12km나 떨어진 옥천 큰집에 차례를 지내러 가던 중 폭설 속에 쓰러진 아버지를 구하려고 자신의 옷을 벗어 아버지에게 입혀주었으나 끝내 부자가 함께 동사하였다. 그 후 효자 정재수의 이야기는 영화화 되어(아빠하고 나하고) 숱한 사람을 울렸다.

눈은 많이 와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어찌 자연을 미워할 수 있을까. 자연의 위력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사회의 한 모습을 시인 오탁번은 '폭설'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 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차가운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렸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중략..." (작품이라 원문 그래도 게재하였음)

폭설이 내려 비상사태를 맞은 농촌의 위급한 사태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 급한 상황인데 이 시를 읽는 사람은 어찌하여 눈 폭탄 대신 웃음 폭탄이 터지는 것일까. 우리들의 가슴에는 저마다 슬픔의 조각들을 웃음으로 전환시키는 감정의 변속장치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기가 막힌 상황에서 오히려 웃음이 나오는 이상한 감정구조를 우리는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눈이 오면 집 앞에 눈을 치우는 것은 하나의 관례이고 시민들이 취해야 할 상식인데 산업화 시대를 맞아 개인주의가 팽배해서 그런 것인지 요즘은 자기 집 앞의 눈도 잘 치우지 않는다. 특히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하다. 고육책으로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으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는 규정도 나온다고 한다. 도덕적 잣대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할 행위들을 이젠 타율로 다스리겠다니 웬지 인간사회가 삭막해진다. 고운 눈(雪)이 미운 눈(雪)으로 변해가는 재미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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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