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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얼이 담긴 문화재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문화재 보존은 우리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유형문화재는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그 형체를 간직하고 있는데 반해 농악, 춤, 줄타기, 농요, 탈춤 등 무형문화재의 상당수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그 명맥을 잇기가 힘들어졌다.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아 전승 지원금이 지급되는 분야는 그런대로 계보를 잇고 있으나 농촌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민속은 사회구조의 변화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충북의 곳곳에도 소중한 민속이 존재하고 있으나 극심한 이농현상과 농업인구의 노령화로 이를 이어갈 젊은 세대가 거의 없다. 지난 197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탄금대 방아타령'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상을 받은 '중원 마수리 농요'는 기능 전수자인 지기선 씨가 타계하여 보존과 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지에는 전수관이 건립되어 있고 농요의 가락도 채보되었지만 이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다. 그나마 지난해 동영상 작업을 한 것이 천만 다행이다. 1975년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영동 설계리 농요'도 사정은 비슷하다. 기능 전수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는 통에 농요의 보존이 다소 차질을 빚고 있다.

그래서 무형문화재를 DVD나 책자로 시연과정을 기록하는 일은 매우 급한 일이 되었다. 청주시에서는 7천4백만 원의 예산을 들여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청주농악의 기록화에 나섰고 청주문화원 등지에서도 민속과 관련된 책자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남아 있다. 연로한 기능 전수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기록물로 남겨야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륙지방인 충북은 전통적으로 농경문화 공동체를 이룬 까닭에 특히 농악이 발달하였다. 면면촌촌 농악대가 없는 곳이 별로 없다. 청주, 괴산, 제천 등 도내 곳곳에서 충청 웃다리 농악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중에서 괄목할만한 농악은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청주농악을 꼽을 수 있다. 청주농악은 충북의 역사성과 농경문화의 흔적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청주의 외곽지대인 지동동 일대에서 이종환 씨 등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청주농악은 삼국의 정립지대여서 그런지 쇠 소리가 빠르고 강하며 돌모갓(전립)을 뒤통수에 쓴다. 판 굿을 짜는 진법(陣法)도 다양하다. 진법은 삼국시대, 전투 대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선형 태극 모양을 하는 '태극놀이 굿', 원을 만드는 '꽃봉오리 굿', 상쇠를 중심으로 갈지(之)자를 만드는 '갈지 자 굿'등 12개의 형태로 진행된다. 이를 사방 진(陣)치기, 오방 진(陣)치기, 십자 진(陣)치기, 멍석말이 등으로도 부른다.

상쇠인 이종환 씨는 어려서부터 꽹과리를 익혔다. 지동동의 농악은 이종환 씨의 부친이 되는 이원삼 씨가 이끌 때부터 유명했다. 이 씨는 아버지를 따라 쇠가락을 익혔다. 청주농악의 상쇠는 김창환 씨를 거쳐 이종환 씨에게 이어졌다. 농악에 타고 난 끼가 있던 이 씨는 대전 지방에서 이름을 떨친 송순갑을 사사하며 기량을 익혔다. 청주농악은 전체적인 가락도 일품이지만 이종환 씨의 개인기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의 까치걸음 등 쇠발림과 부포놀이, 땅재주 등은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뛰어나다.

농악이란 말은 일제 때부터 쓰던 용어로 알려져 왔으나 이미 황현의 '매천야록'에 '농악'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으므로 그 이전, 조선시대부터 쓰여진 것 같다. 농악은 굿과 다르므로 '농악놀이'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OO굿'이라고 혼용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풍물(風物)은 풍물기물(風物器物)의 준말로 민속 악기를 뜻하는 말이어서 '풍물을 논다'하면 틀린 말이고 '풍물을 친다'라고 해다 옳다. 또 '전립(戰笠)을 쓰고 상모(象毛)돌린다'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이는 '돌모갓 쓰고 돌채 돌린다'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상모는 해오라기 털로 만든 깃으로 회전하지 않는다. 돌아가는 것은 종이로 만든 돌채다.

청주농악의 기록을 맡은 김영진 전 청주대교수는 고민 하나를 털어놓았다. 본래 농악은 장단과 강약이 있을 뿐 고저(高低)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민요, 농요의 채보에는 오선지가 동원되었는데 농악은 오선지로의 기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방법이야 어떻든 청주농악의 진면목을 더함도 뺌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면 될 것이다. 차제에 도내 곳곳에 산재한 민속의 면면을 DVD와 책자로 기록하는 일에 지자체가 나섰으면 한다. 첨단 디지털사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오고 있으므로 아날로그 세대가 존재하는 동안에 민속의 이모저모를 청주농악처럼 동영상으로 제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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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