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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3대 읍성하면 서산 해미읍성, 고창읍성, 순천의 낙안읍성을 꼽는다. 세 읍성의 공통점이라면 왜구를 막기 위해 해안가에 축조된 평지읍성이라는 점이다. 이중에서 고창읍성은 읍성으로서의 고색창연한 멋과 맛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조선 세종 때 축조되기 시작하여 단종 때 완공된 고창읍성은 길이 1684m, 높이 4~6m 크기로 없어진 청주읍성과 규모가 비슷하다.

축성당시 여인들이 성 돌을 머리에 이고 날라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성 돌을 이고 성을 도는 성 돌이 행사가 재현되고 있다. 한 바퀴를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를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를 돌면 극락왕생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고창읍성은 성 둘레 전 구간과 성내의 여러 관아시설이 완전히 복원되었다. 3개의 문에는 성문을 반원형으로 둘러싸며 보호하는 옹성(甕城)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고 대나무 해자(垓字:적병의 침투를 막기 위해 성 둘레에 파놓은 연못)가 특이하다. 6개의 치성(雉城:성의 돌출된 부분)도 잘 남아 있다.

읍성은 평지성과 산성이 결합된 형태이다. 이 성도 정유재란과 동학농민운동 당시 불에 타 많은 부분이 소실된 것을 1976년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였다. 성내에는 동헌과 향청(수령을 보좌하고 향풍을 정립하던 곳), 옥사, 풍화루(豊和樓) 등 22채의 관아건물이 복원되어 고색창연한 맛을 더해준다. 풍화루(豊和樓)현판은 서예의 대가 석전(石田) 황욱(黃旭)이 썼다. 성내에는 2천여 그루의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빽빽하다. 들국화도 제 계절을 만난 듯 국화 향을 피워 올린다. 대원군 집정 당시 건립한 척화비도 보인다. 성 돌이에는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역사와 자연 경관 감상을 겸할 수 있는 코스가 마련돼 있다. 읍성을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현장에서는 영화나 TV드라마도 간간이 촬영한다.

성문 앞에는 김수현 전 충북대 교수 작품인 '성돌을 인 여인'이 관객을 맞는다. 김 교수는 이곳이 고향이다. 성 맞은편에는 이 고장 출신으로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1812~1884)를 기념하여 동리(桐里) 국악당이 들어서 있다. 이와 이웃하여 신재효가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던 '신재효 고택'이 그대로 남아 있다. 1850년(철종1년)에 건립된 정면 6칸 측면 3칸의 비교적 큰 초가로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토끼타령, 변강쇠 타령 등 판소리 여섯마당의 고향이다. 판소리를 전수하는 장면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돼 있다. 고창의 고인돌은 화순·강화와 더불어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고대에는고인돌 축제로, 중세에는 읍성 축제로, 근대에는 판소리 축제로 문화의 향기를 잔뜩 뿜어 올리는 곳이 고창이다. 이기에다 미당(未堂) 서정주의 시정(詩情)을 맛볼 수 있는 국화축제도 열린다.

청주에도 고창읍성과 비슷한 규모의 청주읍성이 있었다. 규모는 비슷하나 기능은 훨씬 컸다. 통일신라시대 서원경의 위치를 청주읍성으로 잡는 학자들도 많다. 청주읍성은 천년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데다 충청병영이 있던 곳이다. 임진왜란 후 방어개념이 바뀜에 따라 충청병영은 효종 때 충남 해미읍성에서 청주읍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충청병영은 충청병마절도사(忠淸兵馬節度使)가 기거하던 곳이다. 남문인 청남문이 있던 구 조흥은행 앞은 꽤 넓은 편인데 이는 청남문을 보호하던 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주읍성은 불행히도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11년~1914년 초기에 헐려 그 성돌로 하수구를 쌓은 것이다. 시가지 개정이라는 미명아래 청주읍성이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읍성뿐만이 아니라 청주읍성 안에 있던 여러 객사가 있었는데 거의 파괴되었거나 타처로 옮겨졌고 동헌의 청녕각(淸寧閣) 현판도 중앙공원의 병마절도사영문(兵馬節度使營門)으로 옮겨달아 한때 향토사를 혼란케 했다. 일제가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 전투에서 조선의 의병과 승병에게 패했던 앙가픔을 한 게 아닌가 추정된다. 청주읍성이 그대로 있었다면 고창읍성보다도 더 큰 볼거리와 문화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터인데 이제 그런 꿈은 꾸기조차 힘들게 됐다. 차선책으로 4대문만이라도, 아니 청남문 만이라도 복원하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으나 이야기만 무성할 뿐 읍성이 허물어진지 1백년이 지나도 결말을 보지 못하고 있다. 차선책으로 간선도로 변에 있는 북문(현무문)을 복원하고 나머지는 그래픽으로 처리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도 부지하세월이다. 청주읍성과 남석교는 천년고도 청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부분적이나마 청주읍성을 복원하고 땅속에 묻힌 남석교를 구출해내는 것은 역사도시 청주의 최대과제다. 차일피일 자꾸 미룰 일이 아니다. 고창읍성을 모델로 삼으면서 역사도시 청주를 가꾸어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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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