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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흥덕사에서 찍어낸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의 행간을 거닐다보면 인류문화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걸출한 두 여인을 발견하게 된다. 한 분은 '직지'의 간행 당시 발간 비를 부담한 비구니 묘덕(妙德)이요, 또 한 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서가에서 '직지'를 찾아내 세상에 알린 재불 학자 박병선 박사다.

'직지'의 간기에 보면 시주 비구니 묘덕(施主 比丘尼 妙德)이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책의 편찬은 백운화상의 제자 석찬, 달담이 담당하였지만 그 출판 비는 비구니 묘덕이 댔다.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여자가 해냈으니 가히 여장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직지'하면 우선 백운화상을 떠올리고 이 책을 편찬한 석찬, 달담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직지'의 탄생은 한 두 사람의 공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합작에 의한 것이고 막대한 출판 비를 댄 한 비구니의 시주에 탄력을 받아 이루어졌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어미자를 깎은 장인이라든지 쇠를 다루는 주물공, 활자를 다듬고 짜 맞추는 식자공과 조판공, 한지를 만든 장인, 출판용 유연묵을 생산한 장인 및 인쇄 제본공 등 수많은 사람들이 호흡을 맞춘 결과 인류 문명사에 빛나는 '직지'가 비로소 빛을 본 것이다. 이로 보면 '직지'의 탄생에는 주연급 보다 오히려 조연급의 역할이 더 돋보인다. 기실 주연급으로 알고 있는 백운화상은 '직지' 인쇄본 제작 3년 전에 입적하여 금속활자본으로 제작된 자신의 저서도 읽어보지 못했다.

비구니 묘덕은 누구인가. 확실히 드러난 사실은 없지만 그간 관련학계의 연구에서 묘덕은 고려 충선왕의 사위 정안군의 후실 임씨(任氏)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묘덕이 왕실과 관련된 인물이었기에 그 많은 출판 비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금속활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해도 출판 비를 대지 못했다면 금속활자본 '직지'는 결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직지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박병선 박사는 문명의 나라 한국을 빛내고 학문의 고장 청주를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분이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지난 1955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소르본 대학과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역사학과 종교학을 전공,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시간제(파트타임)로 일하면서 '직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구한말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인 꼴랭드 쁠랑시가 수집하여 챙겨간 '직지'는 서적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에게 넘어갔고 앙리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된다.

'직지'는 1900년도에 열린 세계만국박람회에 출품되었으나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1901년에 모리스 꾸랭이 '한국서지'를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직지'가 언급되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책의 숲으로 숨은 '직지'는 60여 년 동안 서가에서 낮잠을 자다 지난 1968년 박병선 박사와 만났다. 박 박사는 3년간 연구를 한 끝에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동양학 대회에 '직지'를 내놓아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으로 공인을 받는 수확을 거뒀다.

그는 '직지'의 존재와 더불어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도 확인하며 반환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 공로로 2007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청주시로 부터는 명예시민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직지 축제가 열릴 때면 어김없이 청주에 나타나 학술회의 등에 참여했던 그가 최근 직장암 진단을 받고 경기도 수원 성 빈센트병원에서 투병중이다. '직지'를 연구하느라 결혼도 미뤄뒀던 까닭에 병 수발할 사람도 없고 치료비도 밀려있다.

충북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238-9100-9200), 청주시 산하 공무원들의 '천사(1004)나눔 운동', 가톨릭 등지에서 도움의 손길이 잇따르고 있으나 지병이 완치된 상태가 아니므로 지속적인 모금활동이 필요하다. 우리는 박병선 박사에 대해 그동안 상당한 빚을 지고 있었다. 청주의 금속활자를 유네스코와 세계학계에 널리 알려 공인을 받게 한 일등공신임에도 박 박사에 대해 이렇다 할 인사치레도 변변히 못했다. 혼자 살아오면서 청주의 명예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친 그가 암 투병 중이라는데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동안 불우이웃을 위해 얄팍한 호주머니를 털어가며 서로 돕고 살았다. 매년 세밑이 가까워오면 앞 다퉈 성금을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포근한 겨울을 선사했다. 하물며 청주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노심초사하다 병을 얻은 노학자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치료비를 보태주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그동안 진 빚에 대한 자그만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십시일반으로 청주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을 전달했으면 한다. 학문은 모으고 사랑은 나눠야 그 값어치가 커지는 법이다. 박병선 박사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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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