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 기억 속으로 난 길로 자꾸 가면

2024.09.11 14:30:10

기억 속으로 난 길로 자꾸 가면
          이영선
          충주 풀꽃동인



며칠째 비가 오다 멈춘 날
하릴없이 걷다 문득 멈춰 서는 곳
가난한 농사꾼의 오두막이어도 좋겠다

노간주나무로 깎아 만든 코뚜레가 외양간 처마 끝에 걸려 있고
코뚜레에 매달린 엽전이 비바람에 찰랑대고
물기 가득한 울타리 사이로 오리 한 마리 뒤뚱거리고
타닥타닥 솔가지 타고 있는 아궁이
여물 삶는 냄새 하얗게 피어오르는 가마솥

채마밭을 겅중겅중 넘나드는 철없는 송아지 뒷발질에
고추며 가지며 토마토가 밭고랑에 나뒹굴고
열없이 당한 봉숭아 꽃잎들 투두둑 떨어지는데

부랴부랴 농부는 외양간 앞에 주저앉아
코뚜레 뚫을 노간주나무 깎는다
둥글게 휘어진 노간주나무가 코 사이를 파고들 때
그 송아지 목 잡힌 채 큰 눈만 끔벅거리다가
눈 깜빡할 사이 코청 뚫린 일소가 되고

사립문 밖 외길로 등 굽은 노인 하나가
저벅저벅 걸어 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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