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수
안전보건공단 충북북부지사 화학사고예방센터장
언제부터인가 규모가 있는 행사나 발표 시에 행사자료(발표자료) 첫 장에 "우리 사업장의 비상대피로 안내입니다"로 시작한다.
이렇듯 비상대피의 개념은 이미 우리 일상 속으로 들어온 지 오래다.
그러나 중요성에 비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사업장에서 비상대피가 이뤄지지 않아 인명피해가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는 2020년 4월에 발생한 이천 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 화재다.
우레탄 폼 작업을 하다가 용접불똥이 점화원으로 작용하여 화재가 발생했는데, 검은 연기로 인해 비상대피로를 찾지 못하고 결국은 사망자 38명, 부상자 10명이 발생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이렇게 인명피해가 많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위험물질을 제조·취급하는 작업장과 그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는 출입구 외에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를 1개 이상 설치하도록 규정한다.
또 유사시 작업자가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항상 관리해야 한다.
아무리 비상구를 잘 설치하여도 화재나 위험물질 누출 같은 비상시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비상구 근처에 물건을 쌓아둔다거나 비상구로 통하는 문이 잠겨있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럼 위험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사업장은 비상구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이다.
화재나 사고 등으로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할 수 있는 일정규모(연면적 400㎡) 이상이거나 상시근로자가 50명 이상 작업하는 옥내에 있는 작업장에는 비상시에 비상내용을 신속하게 알리기 위한 경보용 설비 또는 기구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비상대피로 또는 비상구를 잘 설치하고 경보용 기구 등을 비치해 놓는다고 해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설치된 비상대피로나 비상구를 잘 관리하고 비상시 또는 항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또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물질과 여건에 따라 비상상황을 여러 가지로 가정해 사고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시나리오에 따라 근로자를 교육하고 주기적으로 비상훈련을 함으로써, 실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기존에 훈련한 내용대로 행동하면 될 정도로 반복훈련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비상대피가 일상화되도록 해야 한다.
작업자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비상대피를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내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상훈련 후 훈련 계획, 내용 등에 대해 자체평가를 해서 잘못된 계획이나 행동 등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경영자가 반드시 검토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다시는 산업현장에서 화재 또는 위험물 누출 사고시 비상대피를 하지 못해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산업현장의 책임자는 비상대피로를 확보하고, 유효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