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베스트셀러 작가 김훈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국민일보, 한국일보 등에서 편집위원, 편집인 등 책임자급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그는 2002년 1월 현장취재 기자로 변신했다.
부국장 급 대우를 받았지만, 간부기자의 현장취재 자원은 많은 언론인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줬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
김 작가 글은 단문체이면서 힘이 실려 있다. 한 문장을 읽는데 호흡 한 번이면 족하다. 요즈음 기사에 단문체가 많이 확산됐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한 문장에 5~6개 단락까지 늘어진 기사가 적지 않았다. 긴 문장 때문에 쉼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칼의 노래'를 통해 김 작가를 처음 만났다. 기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필휘지(一筆揮之)·필염산하(筆染山河)'라는 '사자(四字) 단어'를 걸은 것도 김 작가의 영향이다.
일필휘지는 붓을 한번 휘둘러 줄기차게 써내려 간다는 뜻이다. '필염산하'는 붓으로 온 산하를 물들인다는 의미다.
이순신 장군의 장검에 새겨진 '일휘소탕(日輝燒湯)·혈염산하(血鹽山何)'를 흉내냈다.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라는 장엄한 의미를 '한번 휘둘러 붓으로 쓴 글로 강산을 물들이겠다'는 다짐으로 바꿨다.
김 작가는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를 꼼꼼하게 표현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넘쳐 책장을 연 순간부터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 내렸다.
1인칭의 이순신의 엄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 작가였다. 묘한 복화술에 독자들은 매료됐다. 이순신의 고뇌, 외로움, 절망은 살아있는 현대인들의 번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 수 없었고 벨 수 없었고 조준할 수 없었다. 벨 수 없는 것들 앞에서, 나는 다만 적의 종자를 박멸하려 했다(칼의 노래 1권).'는 문장은 비장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남한산성'은 성(城)에 고립된 사람들이 겪은 47일간의 모습을 그렸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담론 대결을 두 축으로 한다. 성을 지키자는 쪽과 성을 버리고 나가자는 쪽이 말로 부딪친다. 그리고 뒤엉켜 싸운다.
전자는 죽어서 뜻을 세우자는 것이었고, 후자는 살아서 임금과 백성들에게 도생(圖生)의 길을 열어주자는 주장이었다.
이 역시 430년 전 발생한 전쟁 상황만 표현한 것은 아니다.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숨죽이고 생각에 잠긴다. 당시 상황에 지금의 현실을 덧씌우려 노력한다.
'칼의 노래'에서 김 작가는 철저한 이순신이었지만, '남한산성'에서는 1인칭 관점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김 작가는 김상헌 편이 아니었다. 물론, 최명길 편도 아니다. 작가가 옹호한 것은 개별적 인물이었다. 국가보다는 민본(民本)의 주체인 백성이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얼마 전 지역의 한 단체장이 김 작가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선물로 보내왔다.
'라면을 끓이며'는 오래전 절판된 산문에서 기억할 만한 최고의 산문들만 가려 뽑았다. 그 후 새로 쓴 원고 400매 가량도 합쳤다. 소설보다 낮고 순한 말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작가의 바람이 담겼다.
되짚어 본 김훈의 철학
먹고 살기의 지옥을 헤매는 보통 사람들의 자화상을 특유의 문체로 풀어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서는 이순신 장군의 판옥선과 비교하면서 평형수를 따졌다. 그러면서 국가의 존재를 물었다. 세월호 사고 전과 후 둘로 갈라진 잣대에 대한 일침도 빼놓지 않았다.
김 작가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그러나 '사상(思想)의 관점'으로만 그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의 내면세계다.
센 불로 끓인 라면의 맛을 예찬한 대목에서 양은냄비가 떠오른다. 민초들의 삶을 센 불에 투영시켰다.
김 작가는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서 베어야 할 적과 품어야 할 민초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그러면서 긍휼(矜恤)의 마음을 늘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