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不義), 그리고 불이익

2019.04.16 17:49:53

[충북일보] 정치는 곧잘 사실을 왜곡한다. 눈에 보이는 뻔한 말로 여론을 호도한다. 언론은 춤 춘다. 각각 진보와 보수의 철학을 참칭(僭稱)하며 다양한 잣대를 들이댄다. 결론은 이익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불이익 못 참는 세상

중국 후난성 출신으로 방송 기자를 역임한 리니엔꾸(李年古). '중국인,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의 책의 저자다. ㈜도쿄리스메틱 중국정보센터의 실장과 '중국경제주간' 편집장으로 근무하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웠다.

이 책은 중국인이 양보를 몹시 싫어하는 이유를 전통적인 배경과 함께, 일종의 게임처럼 자극적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미학적 의미까지 부여했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는 오늘 중국이 아닌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경험한다.

세월호 참사 5주기.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서로를 경멸하는 이분법적 논리만 훨씬 커졌다.

세월호는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문제다. 제천화재 등 대형 참사사건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런데도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고민하지 않는다. 서로가 물어뜯는데 혈안이다.

2030세대들은 이렇게 말한다. 불의는 참을 수 있어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스타벅스를 찾았다. 50대 이상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플로어를 가득채운 30대 주부들을 보면서 더 이상 재래시장 또는 토종상권을 이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다.

요즈음 젊은 층은 늘 '맥시멈 라이프(Maximum life)'를 지향한다. 과거보다는 넉넉함에도 더 갖고 싶은 마음은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봉사와 헌신, 공유를 실천했던 옛 성현(聖賢)들의 가르침은 이미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문제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이 후보자의 남편이 고교 동창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친구 부부가 후보자 지명을 거절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야 공방은 논점이 틀렸다. 적어도 현 시점까지는 이 후보자 가족을 비난해서는 곤란하다.

판사 재직 시절 부적절한 주식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 그때 적절한 조치를 하면 된다. 이해충돌, 내부정보 활용도 최종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상황에서 후보자가 사퇴한다면 어떻게 될까. 궁지에 몰리면 투사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서 매장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늘 일관되지 못한 잣대가 문제다. 과거 정부에서 '국민정서법'을 들먹이며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후보자 낙마를 주도한 어느 현직 장관은 국정에 대한 노하우보다 각종 구설수에 화려하면서도 돋보이게 대응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그동안 '국민정서법'을 들먹였던 사람들은 모두 반성해야 한다. 반대로 잘못을 보고도 후보자를 엄호하는데 몰두했다가 지금은 공격수로 돌변한 사람들도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국민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흑백TV처럼 낡은 청문회 장면에 신물이 난다. 너네는 무조건 틀리고, 우리는 모두 맞는다는 논리가 참으로 저급하다.

'국민정서법'의 함정

여야 모두 반성을 전제로 국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하나의 원칙, 즉 일관된 잣대를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공동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내부결속이 시급하다. 불의를 보면 항거할 수 있는 의(義)가 리(利)에 앞서야 한다.

이미선이 낙마하면 조국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참 옹졸하다. 조국을 위해 이미선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그렇다. 두 주장 모두 국민 한사람을 이빨 빠진 퍼즐 한 조각쯤으로 치부하는 행위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지난 시절 여야 정치인들이 했던 말과 행동 모두를 기억한다. 그리고 모두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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