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있는 '글 창고'가 사라지는 세상

2018.01.24 16:37:02

'글 쓰는 인간(Homo Scribens·호모 스크리벤스)'의 시대다.

매일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지 않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다. 유명 포털사이트나 청와대 홈페이지는 '댓글 민주주의의 광장'이 됐다.

그런데 점잖거나 수준높은 글은 대체로 인기가 없다.

내용이 팩트(Fact·사실)인지 여부는 둘째 문제다.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의 글이나 기사라야 잘 먹힌다. 왜곡된 내용이 퍼나르기를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여론'으로 둔갑되기도 한다.

필자는 페이스북 회원이다. 하지만 가끔 직접 쓴 주요 기사를 올릴 뿐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넘쳐나는 엉터리 정보를 보거나,친구들에게 맞장구 쳐줘야 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페이스북이 고품질 뉴스에 우선 순위를 매기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오늘날 세상에는 선정주의, 오보, 양극화가 너무 많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런가 하면 네이버는 자체 사이트에서 "뉴스 댓글이 조작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기자가 살고 있는 세종시와 관련된 각종 뉴스나 정보, 특히 부동산은 인터넷상에서 검색 순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이 도시의 역사가 짧은 반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종'이란 이름이 붙은 모 포털사이트 카페의 경우 올해 1월 현재 회원 수가 12만여명이나 된다.

기자는 얼마 전 이 카페의 회원으로 가입한 뒤 직접 쓴 주요 뉴스를 수시로 퍼다 날랐다.

지역 주요 현안에 관해 언론인으로서의 생각을 정리,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1개월여만에 결국 회원을 탈퇴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글 내용에 대해 '기레기(기자 쓰레기란 뜻의 비속어)' 운운하는 댓글을 올리는 몰상식한 회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지역언론을 찾아보기 힘든 세종에서 이 카페는 이제 언론사 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해당 포탈사이트의 '대표 인기카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중앙일보가 운영해 온 '조인스 블로그(blog.joins.com)'가 오는 2월 1일 문을 닫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 블로그는 국내 언론사 중 처음으로 2004년 3월 30일 문을 열었다. 필자는 당시 중앙일보 기자의 일원으로 개인 블로그 '펜은 칼보다 강하다'를 개설, 올해 1월 기준 누적 방문자가 1천300만명을 넘어섰다.

조인스는 뒤이어 개설된 조선 블로그(조선일보)와 함께 국내 블로그 가운데 가장 권위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기자들이 쓴 심층기사나 칼럼 등은 일반인들에게 훌륭한 '글쓰기 교재' 역할을 했다.

최준호 기자 블로그는 이른바 '기자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2010년 8월 충북일보 소속으로 세종시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새로 개설한 폴더 '세종시를 아시나요'도 방문객이 많았다.

하지만 각종 포털사이트와 SNS 등이 범람하면서 언론사 블로그는 점차 설 땅이 좁아졌다.

결국 조선일보는 몇 년전 블로그를 폐쇄했다. 며칠 뒤면 조인스 블로그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양질의 블로그는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조인스 블로그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거대한 온라인 지식정보창고' 였다.

하지만 파워 블로거 기자는 이제 매일 수천 명에 달하는 방문객에게 '글 창고'를 열어 줄 수 없게 됐다. 개인 의사와 무관하게 창고 문을 닫아야 하니 죄송하고 안타깝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쫓아낸다"라는 경제학 용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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