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돈을 잘 벌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복 받을 일이다.
하지만 세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문제다. 필자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다음은 기자가 회원으로 있는 한국납세자연맹이 최근 발표한 '한국 납세자들이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이유' 9가지다.
첫째, 내가 낸 세금이 낭비되고 내겐 돌아오지 않는다. 둘째, 지하경제 비중이 높아 세금 안 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셋째, '성실 납세가 옳다'는 사회적 규범이 형성돼 있지 않다.
넷째, 정부 신뢰도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세율은 결국 조세 회피를 부추긴다. 다섯째, 불합리한 세금이 많다. 여섯째, 세법을 지키는 정직한 사람은 실제 얻는 이익보다 세금을 더 낸다.
일곱째, 세법이 너무 복잡하다. 여덟째, 성실 납세를 해도 리스크(위험)가 줄어들지 않는다. 아홉째, 세무조사를 당해도 세금을 줄일 여지가 있다.
회원이 100만명이 넘는 납세자연맹은 국내 최대 규모 시민단체 중 하나다.
회원 대다수는 직장인·전문가 등이다. 따라서 이들이 여러가지 문제를 지적하는 점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조세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는 '세금으로 봉급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에는 공무원이나 국회의원,후자에는 필자와 같은 민간 직장인 등이 해당된다. 전자들은 후자들의 위임을 받아 세금을 올바르게 집행해야 할 책무를 진다.
하지만 최근 잇달아 보도되는 사례들을 보면 '세금 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내년부터 공무원을 크게 늘리고, 최저임금 인상분을 세금으로 보전키로 한 게 대표적 사례다. 제주 해군기지 방해 시위로 발생한 국민 세금 손해를 불법 시위꾼들에게 물어내라는 구상권 청구를 철회한 것도 마찬가지다.
선거 때만 되면 특권을 내려놓겠다던 국회의원들은 비서관을 1명씩 늘렸다.
오랜 기간 '뜨거운 감자'였던 종교인 과세도 내년부터시행된다. 하지만 '종교활동비 무한정 비과세' '세무조사 제한' '기타소득 신고 시 근로장려세제 혜택 부여' 등 특혜 요소가 남아있다.
나라 살림살이에 쓰이는 세금, 즉 예산의 집행 우선 순위를 정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다.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짠 내년 예산은 '보편적 복지'가 1순위다. 하지만 세종시민인 기자는 '국토균형발전'에 우선 순위를 두고 싶다.
수도권은 '고도비만'이 된 지 오래다.
국토면적의 11.8%인 서울·경기·인천이 지난해 거둔 지방세는 전국의 54.7%로, 인구 집중률(49.6%)보다도 더 높았다.
그런데도 주요 정부 정책은 수도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컨대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주거복지로드맵'을 보면 내년부터 2022년까지 119조 원을 들여 전국에 지을 공공주택 100만 가구 가운데 62%가 수도권에 배정됐다.
이를 위해 그린벨트 336만여㎡까지 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획이 성공하면 수도권 비만증은 더욱 악화될 게 불보듯 뻔하다.
이런 점에서 2009년부터 도시 거주 20~40대를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지방으로 이주시키는 '지역부흥협력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본 사례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3년간 농촌에서 농·임업이나 마을 특산품 개발 등에 종사하는 임기제공무원으로 일하면 정부가 해당 지자체에 내려보내는 특별교부세를 통해 봉급을 준다. 올해 3월말 임기가 끝난 협력대원 2천230명 중 1천396명(63%)이 지역에 정착했다니 상당한 성과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한 '출산장려금제' 같은 전시성 정책보다 이런 데 세금을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