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
다른 것은 몰라도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에 휘말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박지만·박근령 등 친동생들도 청와대에 불러들이지 않는 점만 보아도 친인척 비리는 없을 것으로 확신했다.
청주 출신 사업가이자 대통령의 사촌 형부 윤모 씨가 송사(訟事)에 휘말린 사건을 보도하면서도 대통령은 관련 없는 사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청와대 취재가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춘추관에 들어가면 하루 종일 보도자료만 바라본 적이 수두룩했다. 언론은 이를 불통 청와대로 평가했다.
이익공유 관계 왜 해명 안했나
특검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이익공유 관계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특검의 브리핑 내용을 선뜻 믿지는 않았다. 부모형제 간에도 돈 문제만큼은 정확하게 계산하는 우리사회 구조상 불가능한 규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이익공유 관계를 뒷받침할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답답했다. 이럴 때 대통령은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라도 본인의 은행계좌를 오픈했어야 했다.
'봐라, 최순실과 금전거래 자체가 없다'고 항변하면 끝날 일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특검조사를 거부하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불허했다.
오로지 대리인단을 통해 최순실·고영태 불륜관계를 부각시켰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관련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특검이 최순실·고영태 관계를 조사하지 않은 점과 고영태 일당의 녹취록에 대해 침묵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유력 국회의원들이 고영태 일당을 의인으로 추켜세운 것도 매우 부끄러운 일임은 틀림없다.
대통령은 파면됐다. 검찰은 이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함께 고영태 일당을 둘러싼 의혹도 밝혀야 한다. 대통령이 이미 파면된 상태에서 병행수사는 당연한 조치다.
대통령 파면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태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하고, 검찰은 후속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사법적 단죄를 내려야 한다. 박 전 대통령 측도 특검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불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유야무야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 대한민국이 대통합을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양심을 걸고 진실을 밝혀내는데 협조해야 한다.
검찰이 대통령 선거 일정을 감안해 수사를 벌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일정과 수사 일정은 별개로 진행되어야 한다.
촛불·태극기 집회 세력도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대중을 선동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극우와 극좌 등 양극단이 매우 심각하다. 이제는 각자의 고집스러운 주장을 멈추고 긴 호흡으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승복과 결백은 별개의 문제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파면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신 떳떳하다면 검찰 수사를 본인의 결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일단 헌재 결정에 승복해 더 이상 국론이 분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중에 결백이 입증된다면 그때 가서 항변하면 된다. 헌재의 이번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없지만, 그래야 전직 대통령의 명예라도 회복할 수 있다.
국민은 똑똑하다. 누가 이번 탄핵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꿰뚫고 있다. 국정운용에 대한 확실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반사이익만 기대하는 세력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도 '내가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싶다. 이미 상당수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은 전 대통령이다.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검찰의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는 방법 밖에 없다.
결백이 입증되면 다행이다. 그렇지 못하면 자연인 신분으로 사법처리를 받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