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입춘(立春)이었던 지난 4일. 서울역 주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대한문과 광화문 두 곳에서 열린 태극기와 촛불 집회 현장을 둘러봤다.
두 집회 모두 그럴듯한 주장, 그러나 곳곳에서 논리의 비약은 넘쳐났다.
구름떼 인파 몰린 '태극기·촛불' 집회
세련미는 떨어졌다. 단상에 올라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매우 허술했다. 그럼에도 거대한 태극기 물결은 가슴 한쪽에 웅크리고 있었던 애국심이라는 녀석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했다.
군중 속으로 빨려들어 갔을 수도 있을 것처럼 감정이 끓어올랐다.
주장은 비교적 간단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시발전인 '태블릿PC' 보도가 조작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회의 탄핵소추안과 특검 수사, 헌재의 탄핵심판 모두 원인 무효라고 외쳤다.
사실 '태블릿PC' 보도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의아스럽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최초 보도에서 '태블릿PC'를 독일 쓰레기장에서 입수했다고 했다. 나중에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확보했다고 번복했다.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확인되지 않은 팩트는 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40년 인연이라고 불리는 최순실씨가 대통령 말씀자료는 물론, 장·차관 인선, 외교·국방문제까지 관여했다는 부분에 대한 진실 여부다.
언뜻 보아도 전혀 똑똑하지 않고, 돈 많을것 같은 강남의 한 아주머니. 이런 사람이 고시(高試)에 외국 유학까지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장·차관들을 떡 주무르듯 했다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지금까지 확인된 다양한 형태의 국정농단 사례만 보아도 쉽게 용서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가 탄핵소추에 이르게 할 정도의 사례인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오후 4시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촛불집회.
역시 구름떼 인파가 몰렸다. 구호는 간결했다. 2월 중 탄핵심판 인용을 촉구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세계인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퀄리티가 높았다.
그러나 이 집회에서도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구호와 주장이 난무했다. 최종 결과가 아직 도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구호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한 때 박 대통령에게 사약을 먹이는 퍼포먼스를 보면서도 많이 불편했다. 박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포승줄에 꽁꽁 묶여 수감되는 모습을 풍자한 모형물은 우리 스스로가 단죄자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했다.
죄(罪)에 대한 단죄는 법원의 판결로 이뤄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상대를 단죄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콩 놔라 팥 놔라'를 외치고 있다.
국정을 농단한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조금 더 성숙된 시민의식을 갖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참을 고민하게 만든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해서야
태극기 집회와 촛불집회 모두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쪽에서는 대통령 누드화를 국회에서 전시하도록 했고, 안보·국익에 심각한 타격을 안겨줄 수 있는 사안도 배려하지 않았다.
태블릿PC를 보도한 언론사 사장과 보도기자가 포승줄에 꽁꽁 묶여 끌려가는 모습도 저주에 가까운 행태다.
온라인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어떤 댓글에서는 살기(殺氣)까지 느껴진다. 이런 나라라면 차기에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비슷한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야권을 죽이지 못해 각종 '카더라 뉴스'를 쏟아내더니, 이번에는 두 집회 보도에서 확연한 온도차를 느끼게 한다.
오는 3월 1일은 1919년 3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3천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시위를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를 기념하는 날이다.
바로 이날 태극기·촛불집회 측 모두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고 예고된 상태다. 3월 헌재 최종 심판을 앞두고 자칫 충돌로 이어지지 않을까 또 걱정스럽다.
충돌은 공멸이다. 이제는 긴 호흡으로 헌재의 심판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