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출입기자의 뒤늦은 고백

2016.12.27 15:02:43

[충북일보] 청와대와 국회를 출입할 때다. 춘추관은 늘 고요했다. 오전 일찍 대변인 브리핑 이후 하루종일 적막함이 흘렀다. 간혹 수석들이 춘추관을 찾아오거나 어떤 이슈에 대해 보도자료를 내놓는 것이 고작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에 심어진 정이품송 후계목이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해 대변인실에 협조를 요청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확인하고 싶었다. 결과는 '노(NO)'였다.

직접 취재가 불가능한 청와대

청와대 재산과 관련된 모든 사항은 총무비서관실 사전 허락을 거쳐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총무비서관실에 얘기하고, 그래도 현장 취재가 어렵다면 사진만이라도 찍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대변인실의 답변은 또 다시 '불가(不可)'였다.

대변인실 행정관에게 따져 묻고 싶지 않았다. 행정관은 아마도 총무비서관실에 확인조차 어려워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총무비서관실에는 이름만 들어도 '쩌렁쩌렁한 권력'의 상징인 대통령의 최측근 이재만 비서관이 버티고 있었다. 행정관 입장에서 말을 꺼내지도 못했을 것으로 짐작했다.

박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린 것은 대언론 정책이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

비선실세 최순실이 검문조차 받지 않고 청와대를 들락날락 하면서 국정을 농단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당수 기자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고작 연풍문에서 비서관·행정관을 만나 차 한잔 마시면서 청와대 속사정을 간접적으로 듣는 사례를 제외하고 2년 4개월 동안 무엇을 취재했는지 자괴감이 들 정도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폐쇄적인 국정은 언론을 홀대하고 비선을 중시했던 근본적인 오류에서 비롯됐다.

청와대 비서실은 차관급인 수석과 1급에 해당되는 비서관, 그리고 2~5급의 행정관 중심의 조직이다. 이를 충북도청 직제에 비교하면 5급이면 팀장(사무관), 4급이면 과장(서기관), 3급이면 국장(부이사관), 2급이면 실장(이사관) 등이다.

언론은 2~5급에 이르는 공무원을 간부로 분류한다. 그래서 2~5급 공무원에 대한 인사가 이뤄지면 온라인·오프라인을 통해 보도를 하게 된다.

그런데 청와대에 근무하는 2~5급 공무원은 전혀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인사발령이 이뤄져도 누가 들어왔는지, 누가 교체됐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헬스트레이너인 윤전추 행정관(3급)과 CCTV를 통해 최순실의 '부하'처럼 비춰졌던 이영선 행정관의 존재를 상당수 청와대 기자들은 알지 못했다.

최순실이 검문도 없이 청와대를 들락날락 한다는 얘기도 소문만 있었고,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 청와대의 현주소였다.

'불가근불가원( 不可近不可遠)'

심지어 몇몇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에 들어갈 때도 자신의 차량을 이용하지 못했다. 청와대가 사전에 공지한 인근의 한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안봉근 비서관의 차량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파다했다, 그렇지만, 이 것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한 때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됐던 한 국회의원은 "지금 국무총리는 청와대 행정관만도 못하다. 그래서 총리 제안이 와도 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상당수 기자들은 '이 정부 정말 큰일 났구나'라고 걱정했다.

정치인들은 보통 언론을 얘기할 때 '불가근불가원'이라고 한다. 가까이 하기도 멀리 하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 청와대는 그동안 언론을 밖으로 밀어내려고만 했다.

'프레스 플랜드리'는 고사하고 언론을 향해 던진 고소·고발장만 따져도 수두룩하다. 그것이 대통령의 의중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참모들의 정무적 처신은 엉망이었다.

최근 공적(公敵)으로 전락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그리고 한 때 십상시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등 숱한 비서들이 언론을 향해 소장(訴狀)을 던졌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들에게 언론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아마도 여기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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