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에 파견된 외무부 소속 한 비서관의 일화가 새삼스럽다. 고 육영수 여사의 사람됨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퍼스트 레이디'의 품격
어느 날 청와대에서 숙직을 했다. 혼자 몸 이었던 비서관은 늘 저녁식사가 문제였다. 당시 청와대 주변에 변변한 식당이 없었다. 시켜먹기도 나가서 먹기도 귀찮고 힘들었다.
어느 날 숙직 때 청와대 가족식당 주방장이 식사를 들고 왔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식판에 음식도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비서관은 주방장에게 화를 내며 나가서 사먹을 테니 안 먹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주방장은 "여사님께서 비서관님은 가족이 없어 도시락을 싸올 형편이 안 되는 줄 아시고 특별히 대통령 가족 식사를 보내드리라고 했으니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비서관은 그 말이 믿기지 않아 다음 숙직 때 주방을 들여다보았다. 이 때 육 여사가 내려오더니 앞치마를 두르고 대통령 가족과 같은 식판을 비서관에게 하나 가져다주라고 주방장에게 지시했다.
대통령 가족 식사는 식판에 몇 가지 평범한 나물과 꽁치 한 마리 정도였다. 비서관은 매우 놀라워 주방장에게 물으니 육 여사가 가족 식사를 중산층 수준으로 유지하라는 방침을 세웠다고 했다.
당시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국민도 많으니, 그 정도면 중산층 수준이라는 얘기다. 비서관은 그 순간 곧 예정된 이민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에 충성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육 여사는 1925년 11월 29일 충북 옥천읍 교동리에서 태어나 옥천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상경해 배화여고를 졸업한 뒤 옥천여중 교사로 근무했다.
1950년 부산에 피란 중 육군 중령 박정희와 혼인해 슬하에 지만·근혜·근영 등 1남 2녀를 뒀다. 그는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세광의 흉탄에 생을 마감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옥천군 옥천읍 관성회관,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 육 여사의 탄생 91주년을 기념하는 숭모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 앞서 친박(친 박근혜) 단체 회원과 행사를 반대한 시민단체 간 고성이 오갔다. '박근혜 퇴진 옥천국민행동' 회원들은 "이 시국에 대통령 모친 숭모제를 여는 게 맞느냐"고 항의했다.
이에 맞서 친박 회원들은 "왜 남의 잔칫집에 와서 고춧가루를 뿌리느냐"며 반발했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를 구속하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민단체 회원이 1인 시위를 하자 욕설과 막말은 1시간 동안 계속됐다. 시민단체 회원 20여 명은 "옥천군민 세금이 들어간 육영수 숭모제를 중단하라"고 외쳤다.
앞서 지난달 14일 경북 구미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숭모제에서도 반발 시위가 벌어졌다.
육 여사 숭모제는 지난 2006년부터 해마다 옥천에서 열리고 있다. 매년 900여 명 정도 참석했지만 올해는 육 씨 종친과 친박단체 회원 등 100여 명으로 대폭 줄었다.
이날 초대된 옥천군수 등 지역 기관 및 단체장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죽은 부모까지 욕보이는 사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엇갈린다. 이를 감안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반발은 찬반을 떠나 논평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의 아내이자 현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 여사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까지 거칠게 반대하는 사례의 적절성이다.
'최순실 게이트'를 바라보는 국민적 분노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모독하는 것은 '부관참시(剖棺斬屍)'의 범위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망동이다.
굳이 억지로 네이밍을 한다면 '연좌제적 부관참시'로 볼 수 있다.
어머니의 91번째 생일 날 '퇴진'을 언급한 박 대통령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대통령이 싫으면 어머니까지 모독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은 육 여사의 인품을 잊지 못하고 있다. 육 여사의 인품을 닮지 않은 것 같은 박 대통령이 야속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