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건설 계획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원조(元祖)'라 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77년 2월 서울시청을 연두순시한 자리에서 "서울 인구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구상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 해 7월에는 '임시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공포한 뒤 철저한 보안 속에 이른바 '백지계획(白紙計劃)'을 수립, 정부에 '행정수도 이전팀'까지 만들었다.
백지계획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회,대법원까지 이전할 행정수도는 현 세종 신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장기지구'였다.
ⓒ국가기록원
반경 10㎞의 이 곳에 1980년부터 92~96년까지 12~16년에 걸쳐 인구 50만명 수용 규모의 자족도시를 만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박 전 대통령이 79년 10·26 사건으로 갑자기 시해당하면서 말 그대로 '백지화'됐다.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12월 19일 치러진 선거에서 '세종시'의 덕을 크게 봤다.
전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신도시 건설이 2년 이상 늦어지면서 충청인들의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이른바 '원안 플러스 알파'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충청권 주민들은 박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 3.6%p를 더 득표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백지계획'에서 만들어진 행정수도 예정지와 현재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위치.
'원안'이라 할 수 있는 세종 신도시 기본계획을 보면 건설 기간은 2007년부터 30년까지 23년, 최종 목표인구는 50만명이다.
단계 별 목표 인구는 1단계(2015년까지)가 15만명,2단계(2016~2020년)가 30만명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1단계부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2015년 12월말 기준 신도시 인구는 당초 목표 15만명의 76.9%인 11만5천357명이었다.
10개월 뒤인 올해 10월말에도 7천796명이 부족한 14만2천204명에 그쳤다. 결국 기본계획을 달성하려면 올해부터 2020년까지 5년간 매년 3만7천여명(주택 1만4천800여 가구·가구 당 2.5명 기준)이 늘어나야 한다.
2013년 2월 25일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이미 전체 임기(5년)의 73%를 넘겼다. 하지만 인구 지표에서 나타난 것처럼,현 정부는 그 동안 세종시민과 충청도민들이 학수고대했던 '플러스 알파' 를 보여주지 못했다. 관련법 상 당연히 세종시 이전 대상인 미래창조과학부가 버젓이 과천청사에 버티고 있는 데도, 행정 최고결정권자인 대통령은 '강 건너 불 보듯'하고 있다.
정부세종청사 입주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났으나, 국민 혈세로 운행되는 세종~수도권 공무원 통근버스가 아직도 매일 수십 대나 된다.
박근혜 정부의 '세종시 원안 플러스 알파' 의지가 없다는 사실은 신도시 건설을 총괄하는 행복도시건설청의 예산 추이로도 알 수 있다.
현 정부 출범 첫 해인 2013년 8천424억 원이던 예산은 2014년 6천986억 원, 2015년 4천920억 원에서 올해는 2천684억 원이다. 4년 사이 31.8%로 줄어든 셈이다.
'최순실 국정 개입 사건'의 영향으로 세종·충청권 주민들의 박근혜 대통령 직무 수행 지지도는 7%(한국갤럽 11월 8~10일 조사)로 떨어졌다.
반면 '대통령이 일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78%나 됐다. 여기에는 대통령이 약속한 '원안 플러스 알파'가 지켜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불만도 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년여 후인 내년 12월 20일이면 새 대통령을 뽑는다. 세종시 탄생으로 충청권의 정치적 위상은 지난 선거 때보다 크게 높아졌다. 따라서 550만 충청인은 이번 선거에서는 세종시 정상 건설에 대한 '진정성'을 가진 후보가 당선되도록 힘써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