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종시민이 보는 'KTX세종역 신설' 문제

2016.10.20 19:14:50

[충북일보] 꼭 10년전인 2006년 일이다.

대전에서 잘 근무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본사 발령이 났다. 다행히 당시 집이 대전역 부근,신문사도 서울역 앞이어서 KTX 출·퇴근을 결심했다.

하지만 승차시간이 40여분에 불과, 출근시간에 눈 좀 붙이려 하면 금방 서울역이었다. 화장실도 거의 만원이어서 포기한 경우가 많았다. 종점에서 내리는 출근과 달리 퇴근시간엔 더욱 불안했다. 몸이 녹초가 되다시피해도, 하차역을 지나칠까봐 눈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다. 결국 3개월만에 KTX를 포기했다.

외지인 세종에서 어렵게 재선에 성공한 이해찬 국회의원이 자신의 선거 공약인 'KTX세종역 신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초고속열차를 시내버스로 만드는 꼴'이다.

1시간 남짓 하늘에 떠 있는 서울~제주 비행기가 청주를 들르는 것과 뭐가 다를까.

참고로 기자는 세종 신도시에 아파트를 한 채 갖고 있다. 따라서 역이 생기면 재산 상 이익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나 충청권 전체 이익을 위해 역 신설은 바람직하지 않다.

첫째, '균형발전'의 기본 취지에 어긋난다. 세종시는 충남·북이 전체 면적의 3%에 달하는 465㎢의 땅을 양보,우여곡절 끝에 탄생됐다. 그 결과 세종은 2012년 7월 출범한 지 3년여 만에 인구가 2배로 늘고 세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지만 인근 대전,청주,공주 등은 이른바 '세종시 빨대 효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

신도시로 주민들이 빠져 나가면서 인구가 줄고, 미분양 아파트가 늘면서 집값이 곤두박질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둘째, 예산 낭비다. 호남선 오송역~공주역 거리는 40여㎞에 불과, KTX로 15분 걸린다.

이 의원이 주장하는 역 신설 예정지는 두 역 중간에 있다. 따라서 만약 정상적으로 정차한다면 고속열차가 7~8분만에 섰다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이 의원은 세종역을 간이역으로 만들어 오송역에 서는 열차는 세종역을 지나치도록 '운용의 묘'를 살리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종역에서 내릴 손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아니다. 만약 세종역이 없다면 오송이나 공주에서 내려야 한다. 따라서 이는 '조삼모사'와 다를 바 없다.

셋째, 세종 신도시 광역교통 개선 대책과 상충된다.

정부는 신도시와 전국 각지 사이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인근 주요 지역 사이에 도로를 신설하거나 개선하고 있다. 모두 18개 노선에 약 2조원이 드는 큰 사업이다.

그 결과 오송,반석,대전 등 주요 역과 신도시 사이에서는 '세종시의 지하철'이라 불리는 BRT(간선급행버스)가 성공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공주역과 신도시 사이에 BRT를 운행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세종역이 생기면 공주 연결도로는 '과잉투자'가 되는 셈이다.

넷째, 세종시의 최대 현안인 '자족기능 확충'에 도움이 안 된다. 세종역 주고객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세종청사를 오가는 중앙부처 공무원이다.

따라서 역이 생기면 공무원들의 세종시 정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4년째 운행 중인 세종청사~수도권 통근버스와도 같은 맥락이다. 연간 수십 억원의 국민 혈세를 들여 통근버스 운행하는 것도 모자라 KTX역까지 만들어야 할까.

역 신설 주장은 '수도권 규제 완화론'과 다를 바 없다. 한 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쪽이 피해를 보는 '제로 섬' 게임이다.

그보다는 기존 오송·공주역을 활성화시키는 게 '사회정의'다. 일반열차만 서는 조치원역과 신도시 사이에 BRT 도로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KTX가 서지 않는 수도권 지역과 신도시를 오가는 열차 승객들의 불편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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