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矜恤)

2014.08.28 15:52:56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왈우 강우규 의사는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斷頭臺上),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猶在春風),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有身無國),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豈無感想)'라는 유서를 남겼다.

의사는 1919년 9월 2일 남대문 정거장(옛 서울역 광장)에서 사이토 마코토 총독 일행을 향해 폭탄을 투척해 일제의 침략성을 폭로하고 한국민의 자주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렸다.

단두대 위에 올라서면서도 망국(亡國)의 한을 씻지 못한 의사의 가르침은 현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오래토록 기억될 교훈을 남겼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과 유가족, 시민·사회단체(NGO) 간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46일만인 28일 단식을 중단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안전의 문제가 심각한 국정과제로 대두됐고, 국민들에게 삶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정부·여당은 국가개조, 즉 적폐(積弊) 해소를 세월호 해법으로 제시했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척결해야 안전한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논리다.

'관피아(관료+마피아), 해피아(해수+마피아), 철피아(철도+마피아)' 등 최근 전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정(司正) 드라이브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낡고 음습한 관행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국민들은 경악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적폐 척결 의지는 역사에 기록될 수 있는 퀄리티 높은 국정과제로 보여진다. 하지만, 적폐를 척결하는 과정에서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법은 전혀 동의하기 어렵다.

세월호특별법과 30여 개의 민생·경제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의 슬픔이 더욱 깊어지고 있고, 경기침체로 서민과 중산층의 고통은 이미 정치권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정치권은 구악(舊惡)과 거악(巨惡)으로 비춰질 수 있다. 서민과 중산층도 민생·경제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세월호특별법과 관련된 여야의 '막말 시리즈'를 보면 국격이 훼손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준다'는 긍휼(矜恤)의 의미를 다시 배워야 한다.

헐벗은 백성을 위해 비단 옷을 벗어주고, 굶주린 백성을 위해 임금은 수라상의 반찬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먼저 씻을 수 없는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더욱 마음을 열어야 한다.

박 대통령 역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만나서 선물을 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월호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위로하고 보듬어 줘야 한다.

이런 것이 진정한 의미의 긍휼이다. 그러면서 적폐를 척결하고 민생안정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국정의 동력을 회복해야 한다.

야당 역시 계파·정파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집토끼 논리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국민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정부와 여당의 국정혁신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래야만 야당도 수권(受權)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대선주자급 국회의원의 '유민 아빠'를 살리기 위한 단식이 자칫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국운의 쇠락을 초래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정치가 가장 심각한 적폐라는 국민적 여론을 귀 담아 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강우규 의사가 유서로 남긴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有身無國)'라는 말의 의미도 뼈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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