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잃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2014.08.07 19:55:21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간부검사와 차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느닷없이 나에게 "50넘게 살아보니 인생 별 것 없더라"며 말문을 열었다. 평검사 시절 간부들을 올려다보면 대단한 존재로만 느껴졌는데,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아보니 별 것 아니더라는 얘기였다. 국민들이 부여한 사법권의 권한을 권력으로 포장한 일부 법조인들의 가식과 위선적인 모습을 볼 때마다 창피하고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많다고 했다.

기자도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역시 기자초년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선배들이 어찌나 무서웠던지 모른다. 특히나 차장이나 부장, 국장님의 모습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로까지 느껴졌다. 불합리한 처분을 당해도 "감히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뿐이었다. "이것도 기사냐"며 제출한 기사를 박박 찢어버리거나 속된 말로 '조인트'를 까여도 감히 입 밖으로 불만을 드러내지 못했다. 오히려 동기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영웅담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나도 저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엊그제 같았는데, 이미 현실이 돼버렸다.

신비로울 것 같았던 그 자리에 앉아보니, 실제 별것 아니다. 자리가 사람의 마음을 위선적으로 바꾸는 듯 했다. 자리에 휘둘리는 사람은 중심을 잃게 된다. 회사 안팎에서 부장님이란 소리를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직함에 맞는 식당을 이용하게 되고 격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유혹이 느껴진다. 밑에 사람보다는 윗사람을 보게 되고 돈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과 어울리기를 즐겨하게 된다. 직함(권력)에서 비롯한 야릇한 유혹이다. 초심을 잃었다는 말을 나를 아끼는 지인들로부터 가끔 듣게 되지만 그보다 달콤한 말을 하는 이들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즐거움은 잠시. 가식으로 포장된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이용하고 이용당하면서 가식적인 기쁨을 주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남은 것은 외로움과 공허함뿐이다. 우리는 생명력이 짧은 자리의 문화에 젖어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가식으로 포장 씌우는 자리의 문화에 우리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 선량한 마음과 정직한 마음이 동반되지 않은 자리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육군 28사단에서 일어난 윤 일변 사망사건도 잘못된 우리 군 승진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생각된다. 폭력의 정도나 방법이 상상하는 정도를 넘었다. 60일 넘게 상급자들에게 온갖 구타를 당했지만 상급자들은 쉬쉬했다. 이 같은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군 이미지는 물론 그 곳에 포함된 구성원들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게 뻔하기 때문에 윤 일병 구타사건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이번 사건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면서 정부는 우선 가해자를 '일벌백계'하고, 지휘관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겠다고 했다. 그리고 새로운 듯 또 익숙한 중장기적인 대책들. 민·관·군 병영 문화 혁신, 보호 관심 병사 관리시스템 개선, 고충 신고와 처리 시스템 개선 등을 내놓고 있다. 사건이 사건인 만큼 기대를 걸어야 하지만 그리 미덥지 않다. 아직 단정 짓긴 어렵지만 과거와 비슷한 식이면 시간이 문제지 또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비관이 앞선다. 그보다도 앞서 자리보존하려는 군문화를 타파하고 나쁜점을 드러내 개선하려는 노력에 힘을 실어주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군 문화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자리의 문화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개선하는데 온 국민이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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