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률 상승의 '슬픈 속사정'

2013.10.24 19:28:27

기자와 같은 5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 1960∼70년대 학창시절은 참 피곤했다.

요즘엔 가정은 가난해도 나라는 잘 산다. 하지만 그 당시는 나라도,가정도 모두 못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라 차원에서 국민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범국민운동'이 참 많았다. 국산품 애용,혼분식 실천,병충해 방제,독서 생활화…. 그런데 정부가 가장 만만하게 여긴 집단은 학생이었다. 전체적인 숫자가 많은 데다,학부모까지 연쇄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근면저축' 캠페인은 가난한 시골 학생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정부 지시가 학교로 떨어지면,도시락도 못 싸갈 정도로 가난한 학생까지도 저금통장을 만들어야 했다. 담임은 종례시간만 되면 저축 실적이 부진한 학생에게 면박을 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수업료를 제 때 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저축을 적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벌을 서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길거리에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도 행인 대다수가 거들떠보지 않는 요즘과 달리 10원짜리 동전도 수거가 잘 됐다.

박정희 정권은 지난 1961년 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시작한 뒤 극심한 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그러다 보니 시골 어린이들의 코 묻은 돈도 정부가 투자자본를 모으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64년엔 '저축의 날'이 지정됐고,70년엔 저축추진중앙위원회가 설치됐다. 그 결과 71년 16%에 불과하던 저축률은 매년 급상승,88년엔 39%까지 올랐다.마침내 80년대말 우리나라의 저축률은 국민들이 근면검소하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을 제치고 선진국 그룹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가 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으로 커졌다. 따라서 이미 '저축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돈이 돌고 돌면서 적정한 소비가 이뤄져야 경제가 살아난다.

그런데 최근 나온 한 보고서를 보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참 답답해진다. 어린 시절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저축을 강요당했던 세대를 비롯한 평범한 가구원들이,자신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소비 대신 저축을 한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평균소비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인과 시사점'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자. 이 보고서의 결론은 "우리나라 가계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탓에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바람에 평균소비성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평균소비성향이란 한 가정의 가처분 소득(전체 소득에서 세금,연금 등 고정적으로 떼이는 돈을 뺀 실제 소득) 가운데 소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일컫는다.

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민간소비 증가율이 GDP(국내총생산) 증가율을 밑도는 소비침체 현상이 지속되면서 경기 회복이 늦어지고 있다. 또 최근 들어 가계는 실질소득이 증가해도 소비를 줄이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2012년 3분기(7~9월)부터 올해 2분기(4~6월)까지 4개 분기의 전년동기 대비 실질소득 증가율은 4.6%, 3.6%, 0.3%, 1.3%였다. 하지만 같은 기간 실질 소비 증가율은 분기 별로 -0.7%, -0.3%, -2.4%, -0.4%를 각각 기록했다. 이에 따라 가계의 흑자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평균소비성향은 급락하고 있다. 그 결과 2011년 1분기(1~3월) 78%였던 평균소비성향이 올해 2분기(4~6월)에는 73%로 하락,소비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돈을 벌면서도 쓰지 않는 이유는 뭘까. 연구원은 "평균소비성향이 급락한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한 저축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불확실성에 해당하는 요인은 고령화,일자리 불안,전셋값 상승 등 3가지라고 설명한다. 또 소비 위축에 대한 영향력은 고령화,일자리 불안,전셋값 상승 순으로 높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나라가 어려운 시대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5~64년생)를 비롯한 중장년층이 늘그막엔 미래를 걱정하며 저축까지 해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연금제 개선' 등을 통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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