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쪽 경기도 구리시와 세종시 사이에 제2 경부고속도로(총연장 129㎞)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국토교통부와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2008년부터 논의돼 오다 6조8천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원 조달 문제로 잠잠하던 사안이었다. 하지만 '복지 우선' 정책을 내세우는 박근혜 정부가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크게 줄이려 하자,세종시 건설 본격화 등을 명분으로 다시 여론화하는 듯한 느낌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필자와 같은 세종시민은 '두 손 들고 환영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많은 돈을 들여 수도로 통하는 멋진 길을 만들어 준다는 데,이를 반대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건설되는 세종시의 기본 이념에 어긋난다. 따라서 필자는 반대한다.
지난 7일로 개통 43년을 맞은 경부고속도로는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단축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어린 시절 경부고속도로 인근 마을에 살던 기자는 개통되기 직전,반듯하게 다져진 고속도로에서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 도로가 개통된 뒤 방학 때에는 멋진 화장실이 딸린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고,예쁜 안내양 누나가 나눠주는 사탕을 먹으며 서울이나 대구 등의 친척집을 방문하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고속도로는 부작용도 몰고 왔다. 넓은 길이 뚫리자 경상도 '철수'와 전라도 '순이'는 너도나도 서울로 몰려 들었다. 서울에서 집 얻을 돈이 부족하면 일단 부근 경기도나 인천에 자리잡았다. 서울의 '빨대효과(straw effect)에 따른 수도권 집중이 본격화된 것이다. 그 후 부산,대구,대전 등 지방 대도시와 인근 지역 사이에 고속도로나 국도 등이 잇달아 건설되면서 이런 현상은 도미노처럼 확산됐다.
2004년 4월 1일 개통된 경부선KTX는 전국을 '반나절(3시간) 생활권'으로 좁혔다. 섬 지역을 제외한 전국 어디든지 당일에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시간거리가 단축됐다. 하지만 서울 빨대효과가 더욱 심해지면서,KTX가 통과하는 주요 도시의 '공동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역을 기준으로 KTX로 서울에서 1시간 이내 거리인 천안·대전은 물론 2시간 이내 거리인 대구에서조차 진료,쇼핑,공연 관람 등을 위해 서울을 오가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서울에서 30분 거리로 단축된 천안은 '서울시 천안구'란 별칭을 얻었을 정도다.
당초 추진된 도시 성격(행정수도)보다 스케일이 크게 줄었지만,세종시는 '경제 논리'로 만들어지는 도시가 아니다. 경제적 측면으로만 따지면 서울에서 130km 떨어진 충청도 허허벌판에 정부청사를 지어 수많은 공무원과 가족,정부청사를 상대로 하는 민원인들을 고생시킬 필요가 없다. 세종시는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시대가 요구하는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정치·행정적 관점에서 만들어지는 도시다.
세종시는 수도권과 최대한 격리돼야 당초 도시 건설 목적에 부합된다. 따라서 물리적 거리야 어쩔 수 없겠지만,'시간 거리'는 너무 가까워질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되면 서울이나 수도권의 아류(亞流) 가 될 개연성이 높다. 세종시는 21세기 대한민국 '신수도권'의 중심지로,지방 발전을 선도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2경부고속도로가 생긴다면 세종시는 인천이나 수원처럼,광역 수도권의 남쪽 끝도시로 전락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도로 인근으로 새로운 개발,투기 바람이 불면서 수도권 집중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수도권~세종 간 접근성이 높아지면서,수도권에서 출퇴근 하는 정부청사 공무원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세종시가 제대로 만들어지고 지역균형 발전이 이뤄지면 수도권의 많은 사람과 차량은 경상,전라,충청도 등으로 흩어지는 게 원칙이다. 국민 세금을 들이든 민간자본을 유치하든,세종시 전체 건설비의 30%나 되는 많은 돈은 차라리 다른 데 쓰는 게 나라 전체를 위해 바람직히다. 세종시가 제대로 건설돼 앞으로 몇 년후 제2호남고속도로나 세종~대구고속도로 건설 같은 것을 걱정하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