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아들 초코파이 몇 개째냐?
아들:11개요,아빠는요?
아빠:12개다.
아들:아빠가 왜 하나 더 먹어요?
아빠:아빠가 어른이니까. "밥 먹으러 가자."
KBS 2TV '개그콘서트' 프로그램의 주요 코너로 자리잡은 '아빠와 아들'의 한 장면이다. 매우 뚱뚱한 두 젊은 개그맨이 벌이는,어쩌면 '허무 개그'라고 할 이 프로그램이 최근 인기를 끈다고 한다. 이유는 뭘까. 우선 진짜 부자처럼 닮은 두 개그맨의 '초헤비급 체격'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는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밥을 먹고 다정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에선 거의 구경하기 힘들다. 따라서 공부나 직장일 등을 핑계로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아들을 둔 부모들이 이 프로를 보며 대리만족 하는 건 아닐까.
이 코너에서 은근히 인기를 끄는 부분은 "밥 먹으러 가자"라는 아버지의 대사다. 밥은 좁게는 "쌀·보리 등의 곡물을 솥에 안친 뒤 물을 부어 낟알이 풀어지지 않게 끓여 익힌 음식",넓게는 "끼니로 먹는 음식"을 뜻하는 말이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밥을 매우 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안녕하세요"보다는 "진지 잡수셨어요"가 어른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이었다. 말을 적게 하는 게 미덕인 유교식 전통으로 인해 식사를 하는 동안 여성이나 자녀는 말을 하면 안 됐다. 하지만 예의범절을 비롯한 가정교육은 기본적으로 '밥상머리'에서 이뤄졌다.
필자는 세종시교육청이 최근 공주한옥마을에서 연 '부자(父子)가 함께 하는 1박 2일 캠프'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캠프에는 세종시내 초등학교 3~6학년 학생 43명과 학생의 아버지,할아버지 등 총 88명이 참석했다. 젊은 시절엔 잘 몰랐지만,중년에 접어들고 보니 아들이 없는 필자로서는 행사 참가자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대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아버지상'은 행사 초반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통 체험 행사를 진행하던 공주시청 소속 구영본 박사가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아빠가 뭐하는 분이야?"
어린이들의 답변이 이어졌다. "돈 벌어오는 사람요." "일 하는 사람요.""우리 가족 학비 대어 주는 사람요."… 하지만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다'든가 하는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이번 캠프의 백미(白眉)는 첫날 오후 5시 10분부터 1시간반 동안 진행된 '밥상머리 교육 및 학교폭력 예방'이었다. 강의는 이 분야 전문가인 논산 가야곡초등학교 유미선 교감이 맡았다.
유 교감은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가정에서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하면 아이들이 똑똑해지고,안정감을 느끼며,예의바른 행동을 하는 데다, 건강해지면서 결국 가족 모두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은 서울대 학부모정책연구센터가 개발,교육과학기술부를 통해 일선 학교에 보급 중인 프로그램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에서는 식사할 때 지켜야 할 5가지 규범으로 '식시오관(食時五觀)'을 실천했다. '이 음식에 들어간 정성을 헤아린다' '이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성찰한다' '입의 즐거움과 배부름을 탐하지 않는다' '음식이 약이 되도록 골고루 먹는다' '인성을 갖춘 후에야 음식을 먹는다'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면서도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2%를 배출한 유대인의 저력도 밥상머리 교육에서 나왔다. 유대인들은 가족끼리 모여 식사할 때마다 조상들의 지혜를 총망라한 탈무드에 대해 얘기하고 토론한다. 자녀를 꾸짖는 일은 식사 시간 이후로 미룬다. 아이도 어른처럼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기 때문이다.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의 어머니 로즈 여사는 식사 시간이 지나면 자녀들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 약속과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2시간이 넘는 긴 식사시간에는 신문 기사나책 내용에 대해 토론했다. 그 결과 케네디는 토론과 연설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연말연시에 바쁘겠지만,주 2회 이상 밥상머리 교육을 실천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