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은 국력이다

2012.10.11 16:25:23

기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한 반에 비만학생이 2~3명 정도였다. 한개 반 평균 학생 수가 60명 정도였으니 비만학생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 몸을 쓰는 일이 많았다.(인스턴트 문화가 지금처럼 생활 깊숙이 자리 잡지 않은 시대배경도 한 원인이다) 몸 쓰는 일은 등굣길부터 시작된다. 기자는 약 2㎞정도 되는 학교를 매일 걸어서 다녔다. 집과 학교의 거리가 이 정도면 동무들 사이에서 가까운 편에 들었다. 등굣길 풍경은 40대 이상이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남학생은 가끔씩 나타나는 차량을 피해 축구공을 몰고 가거나 친구와 야구공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어느덧 교문 앞에 다다랐다. 여학생은 줄넘기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피리를 불거나 구구단을 소리 내어 읊으면 그날은 반드시 음악시험이나 구구단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학교에 와서도 쉬는 시간이면 혈기 왕성한 몸을 가만두지 못했다. 남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속칭 '말뚝 박기' 놀이나 제기차기를 하기 일쑤였다. 여학생들은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를 즐겼다. 정말이지 10분이라는 시간은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갔다. 어머니가 정성들여 싸주신 도시락은 이미 4교시 전에 소화되고 말았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눈을 피해 도시락을 까먹는 스릴을 만끽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밥 달라고 요동치는 '배 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점심시간에 맞춰 식사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운 이유가 더 컸다. 밥 먹는 시간을 아껴 1분이라도 더 놀자는 주위였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땐 다른 반과 축구나 야구시합이 벌어졌다. 평소엔 까칠한 여학생들도 시합이 벌어지면 같은 반 남학생들을 율동까지 가미하며 목이 터져라 응원해 주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전자에 마실 물까지 떠다 받쳤다.

정규수업이 모두 끝나면 집에 돌아가기보다 학교운동장에서 또다시 축구와 야구를 즐겼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엔 뭔가가 부족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먹으면 다시 기운이 용솟음쳤다.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해 동네친구들과 만나 야간 축구와 주먹야구를 즐겼다. 늦어도 9시 뉴스가 시작되기 전까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기자가 장왕하게 어릴 적 생활상을 소개한 이유는 기초체육 분야가 가볍게 여겨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당시 국가정책의 근간이 '체력은 국력'이었을 정도로 체육은 모든 분야의 정신이었다. 일선 학교는 물론 직장에서도 국민체조로 하루가 시작될 정도였다. 하지만 성공만능주의가 이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체육의 존재는 아주 가벼워졌다. 체육시간은 줄어들고 학교운동장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기숙사가 들어섰다.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되다보니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면 재해를 당하듯이 얼마 되지 않아 사회 곳곳에서 성공지상주의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됐다. 비만으로 인한 성인병이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나타나는가 하면 '왕따' 등 학교폭력이 빈발하고 있다. 최근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오상우 교수가 1998~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살이 지나치게 많이 찐 '고도 비만(BMI 30 이상)'인 사람은 12년 동안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고도비만은 1998년 2.4%에서 2010년 4.2%까지 증가했다. 성별로 나눠보면 남성 고도비만율이 1.7%에서 3.7%로 늘었으며 여성 고도비만율은 3.0%에서 4.6%로 높아졌다.

앞으로 어떤 재앙이 어떤 수준으로 발생할지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기초체육 분야를 경시하는 풍조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것이다. 현재 대구광역시에서는 '93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연말 대통령선거와 경제상황에 가려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올바른 정치구현과 먹고사는 문제 역시 국민 개개인이 건강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체력은 곧 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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