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신문명의 도도한 흐름이 역사를 지배하고 있을 때 조선왕조는 4색당파(四色黨派)의 찌든 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에 이어 대북과 소북, 노론과 소론, 노론 시파와 벽파 등으로 갈라졌다.
정권을 잡은 당파는 각종 사화(士禍)를 일으켜 상대 당파의 씨를 말렸다. 4색당파에 이어 등장한 3대 60년의 세도정치는 우리나라 근대화를 발목잡았다.
우리의 피 속에 아직도 이처럼 썩은 4색 당파싸움의 DNA가 흐르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주도했던 보수와 진보는 각각 분파와 합종연횡을 반복했다.
새누리당은 최근 친박과 비박으로 갈라져 사사건건 갈등을 겪고 있다. 대선 경선룰을 갖고 한치의 양보 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마치 이명박 정부 집권 후 국민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았던 세력이었던 것 처럼 착각이 들 정도다.
민주통합당 역시 친노와 비노로 갈라져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곁다리인 통일선진당과 통합진보당까지 합치면 조선시대 사색당파와 곁다리 정파로 난립됐던 상황과 다를 것이 없다.
당파를 형성한 세력 간 건전한 토론과 타협의 정치를 통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이 그랬듯이 최근의 친이·친박, 친노·비노 역시 국민은 바라보지 않은 채 그들만의 '권력다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이렇게 200년 전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국민들의 삶의 질이 좋아질리 만무하다.
국민들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곳곳에서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고, 경제위기의 고착화 현상은 국민들의 꿈과 희망까지 앗아가고 있다.
정부와 정치가 바로 서지 않은 상황에서 종교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전 터진 스님들의 도박사건은 마치 불교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고려시대 말기의 피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종교가 바로서야 국민들이 의지할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삼을 수 있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현상이다.
도심 곳곳과 심지오 농촌마을 곳곳에 '무속신앙'을 상징하는 빨간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고유가로 가계경제가 파탄나고, 금리부담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서민과 중산층들은 더 이상 여유가 없다고 한숨을 쉬고 있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1만 원짜리 한장이면 4인 가족이 한끼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5만 원짜리도 부족할 정도다.
하기에 삼겹살 1인분에 1만~1만2천 원이나 하는데 1만 원짜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의 선출직들은 여전히 '나를 따르라'라는 나폴레옹식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 지역 국회의원에 지방의원까지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지 않고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지역의 심각한 현안을 해결해 달라며 뽑아준 선출직은 당선과 동시에 '나를 따르라'라는 리더십으로 되돌아간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오로지 자신과 당파만 생각할 따름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과거에는 언론만 통제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트위터가 있고 페이스북이 있으며,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도 있다.
선출직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수십, 수백개의 비난 댓글이 달리기 일쑤다. 국민들은 그렇게 여론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국민들은 기억한다. 그리고 때를 기다린다. 그것을 한꺼번에 쏟아놓은 행위가 바로 투표다. 이제는 그만큼 재선과 3선 등 재신임이 어려워진 세상이 도래했다.
국민들의 눈높이는 높아져 가고 있는데 선출직들은 선거 전과 선거 후 확연히 다른 행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당론을 거부하는 선출직을 선호한다. 과거에는 돌출행동이라고 해서 손가락질 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당론을 거부하는 선출직이 환영받는다. 국민을 위한 당론이라면 하루 아침에 영웅으로 부상하기도 한다.
그것은 국민들이 정책의 옳고 그름을 선출직보다 훨씬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4색당파로 시작된 우리의 정치가 혁신을 외면한 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고만 심화시킨다면 그것은 국민적 불행이다. '나를 따르라'가 아닌 '국민을 따르겠다'는 혁명적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생활고에 지친 국민들은 정치인들로부터 정쟁(政爭))이 아닌 희망의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