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전 일로 기억된다. 당시에도 학교폭력이 심각했는데, 언론을 통해 일명 '일진'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의 '이지매' 문화에서 비롯된 일진은 당시에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혔다. 서울, 경기도 등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일진의 심각성이 매스컴을 통해 연일 터져 나왔고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딸자식 키우기 무서운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당시 사회부 차장을 맡고 있던 나는 충북지역에도 일진 모임이 분명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해서 연일 후배기자들을 취재전선으로 내몰며 닥달한 기억이 난다. 충북교육청이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까지 도내에는 일진이 없다고 발표한 터라 취재의욕은 더욱 불타올랐다. 밝혀만 내면 특종이니, 어느 기자가 욕심을 내지 않겠는가. 때문에 늦은 밤까지 후배기자들을 PC방 등지로 내몰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경찰도 학교 내 일진문화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여서 피곤한 줄 모르고 학생들을 상대로 취재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던 중 우리 취재망에 일진의 존재가 드디어 포착됐다. 청주, 청원지역을 중심으로 상당수 중·고등학교에 일진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힘없는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일진들에게 금품을 상납하는 것은 물론 학교간 일진들의 패싸움이 벌어진 사실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서둘러 터트리지는 않았다. 보도에 앞서 경찰의 협조를 얻었다. 철없는 시절 잘못된 판단으로 우를 범한 어린 학생들을 모질게 형사 처벌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계도가 우선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우리의 특종보도로 충북지역도 학교폭력(일진)에서 자유롭지 않은 지역임이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25일 오전 충북지방경찰청 회의실에서 이성한 청장 주재로 학교폭력 근절 대책회의가 열렸다고 들었다. 회의에 참석한 여러 경찰간부들의 입에서 이런저런 대책들이 나왔다. 공통된 점은 일선 학교 교사들의 비협조로 정확한 학교폭력 실태파악이 어렵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고 한다. 따라서 일선 학교의 협조를 얻어 학생, 교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뒤 그 결과를 토대로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수립한다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전해 들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날 대책회의는 '탁상공론(卓上空論)'의 대표적인 예라고 말하고 싶다. 설마 이런 식의 설문조사로 학교폭력의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평소 경찰답지 않은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단언하건대 학교폭력에 대한 피해사례나 유형에 대해서는 기초적 수준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가해학생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유형에 대한 자료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교사에게도 과연 자신이 소속된 학교의 폭력실태를 가감 없이 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이 말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의 장점은 거대한 조직력을 이용한 정보력이다. 왜 이러한 점을 스스로 간과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선 형사 몇 명이면 학교폭력의 가해학생들을 알아내는데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일 것이다. 이를 토대로 교육당국에 협조를 요청한다면 더욱 효과적인 학교폭력 근절 대책이 마련될 것으로 본다. 중요한 점은 이렇게 수집한 내용을 지방청별 또는 경찰서별, 개인별 실적 쌓기나 보여주기식 성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7년 전 일진기사를 특종한 뒤 지금까지 후회, 아니 아쉬움으로 남는 점이 있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폭로하는 데만 급급했던 모습이다.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대안에는 지속적인 열의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점이 정말이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학교폭력 가해학생 중에는 성인범죄 못지않게 철저한 계획 하에 상습적이고 잔인한 경우가 있다.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가해학생들은 계도될 수 있다고 본다. 교육당국과 경찰에 이런 점을 주문하고 싶다. 학교폭력은 계도의 대상이지 단속과 처벌의 대상이 아님을 말이다. 경험으로 볼 때 숲을 보지 못하고 결정된 정책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소멸되고 만다. 학교폭력 근절대책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