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고온다습했던 여름을 뒤로한 채 내일부터는 추석 연휴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 시인의 '낙화(落花)'>
옛 시인은 귀촉도(歸蜀道·두견이) 우는 가을밤에 지는 꽃을 보며 자연과 인생의 섭리를 관조(觀照)한다. 그렇게 깊어 가는 가을날, 서로 보듬고 때로는 상처 주는 민감한 속살들이 가족의 이름으로 한데 모이는 추석이다.
추석은 여론의 너른 마당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기본 단위인 가족과 친지, 이웃들의 만남에서 세상사가 이야기되고 그것이 모여 거대한 민심이 된다.
올해 추석의 최대 화두는 경제가 될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추석을 앞두고 경제는 온통 난리요, 야단법석이다.
추석 물가는 뜀박질을 멈출 줄 모른다. 살인적인 사교육비는 여전하다. 금리마저 뛰어 빚내서 내 집을 마련했거나 전세금을 보탠 가계는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주식에 손을 댄 가계라면 주가가 곤두박질쳐서 그야말로 거덜 났다. 반타작 난 주식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집이라도 팔아 빚을 갚으려 해도 안 팔린다.
한국은행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분기 가계 빚은 1분기보다 19조원 가까이 늘어 900조원에 이르렀다. 가계 부채가 늘면서 이자부담도 사상 최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기대비)도 8개월 연속 한국은행의 물가목표 상한선인 4.0%를 넘어섰다.
이상폭우와 잦은 비 등의 영향으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 9월에는 추석물가까지 겹쳐 하반기에도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증가액도 4조3천억원으로 2008년 이후 3년6개월간 평균치인 3조4천억원을 크게 넘어섰다.
그런데 봉급은 제자리에 머물고 일자리는 늘지 않아 많은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방황한다.
G마켓이 최근 고객(1천288명)들을 대상으로 추석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 추석 고향에 가겠다고 응답한 네티즌이 42%에 머물렀다. 귀향 포기 이유 가운데 31%가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란다.
정부가 물가, 집값, 가계부채와 관련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가 미미하다.
추석을 맞는 서민들은 민생고 해결에 골머리를 앓으며 실망이란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사실 당·정·청와대 간의 사전 조율 없이 불쑥 내놓았다 거둬들인 경제정책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주요 정책마다 오락가락하여 엇박자를 놓으니 국민과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턱이 없다.
정치권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추석 연휴를 맞아 '한가위 민심 잡기' 경쟁에 나설 태세다.
여야 모두 추석 민심이 내년 총선의 향배를 좌우할 '바로미터'라는 판단에서 각별히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각 당 지도부가 중앙에서 민생 행보에 속도를 내는가 하면 의원별로 지역구로 귀향해 구전 홍보 작업에 집중할 모양새다. 공중전과 지상전을 병행하며 이번 연휴를 민심 잡기의 분수령으로 삼으려는 정치 셈법에서다.
정치권은 민심을 낮은 자세로 읽어야 한다. 의도의 진정성과 내용의 신뢰성이 뒤따라야 한다. 두 가지가 갖춰지지 않으면 대화로 포장된 행사는 일방통행 식 이벤트로 끝나기 마련이다. 막힌 곳을 뚫기는커녕 불신과 냉소주의를 부채질하는 역효과만 자아낸다.
아직까지도 많은 국민들은 정치권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추석민심이 미래의 행복을 가져오는 초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길 바란다. 추석민심을 제대로 챙긴 뒤 서민을 위한 정책반영에 힘써 줄 것을 정치권에 촉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