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틀리게' 죽은 장모

2011.01.20 19:11:01

직분이나 신분이 이름에 적합하지 않는 실패나 무지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일종의 의무같은 것이 한국인에게 있다.

선생님은 교사라는 이름에 대한 명분 때문에 모르는 것이 있더라도 모른다고 해서는 안된다.

교사가 모르는 것을 학생이 질문해도 교사는 모른다고 하면 안된다. 교사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교사들은 아는 체 하지 않고 솔직하게 모른다고 답한다. 최소한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가치관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다. 몰라도 아는 체 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직분이나 신분의 이름에 부합하지 않는 실패나 무지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일종의 의무 같은 것이 한국인에게는 있다. 교사라는 이름의 명분 때문에 몰라도 아는 체를 해야만 한다.

옛날 마을마다 있던 서당의 훈장은 그 마을의 문화센터 같은 역할을 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편지를 써주거나 배달온 편지를 읽어주는 일, 사주단자나 제사때 축문을 써주는 일,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지어주는 일, 혼인날이나 이사하는 날 택일 등 문화적인 요소는 서당의 훈장이 대행해주었다. 그 댓가로 보릿되나 얻어서 근근이 살아왔지만 훈장이라는 명분 에 대한 의리는 대단했다.

다음과 같은 우스개 소리가 있다.

어느 마을에 어떤 사람이 장모가 죽어 축문을 써달라고 훈장에게 부탁을 했다. 훈장이 축문을 써 주었는데 실수를 해 장모가 죽었을 때 읽는 축문이 아니라 아내가 죽었을 때 읽는 축문을 써 주었던 것이다.

제사를 지내며 축문을 읽어 내리자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중 축문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 사람은 다시 훈장에게 찾아가 '이 축문이 어딘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하고 물었다.

이때 훈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이사람아! 축문이 틀릴 리가 있나 죽은 사람이 틀리게 죽은 게지'

훈장은 명분 때문에 자기가 틀려도 틀렸다고 해서는 안되기에 축문이 틀린 것이 아니라 축문대로 죽지 않은 사람이 틀렸다고 해서 명분을 살린 것이다.

비단 훈장만이 아니라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은 그 명분 때문에 무지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공동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정치에서도 여당은 야당의 의견이나 시책을 실수로 용납할 수 있는데도 여당이라는 명분 때문에 거부하는 일이 있고, 야당은 여당의 의견이나 시책을 용납할 수 있는데도 야당의 명분 때문에 거부한다.

명분외교는 실없이 명분만을 구하는 사탕발림 외교를 뜻하며 의정단상에서 '명분만이라도 세워달라'는 말은 실은 못얻더라도 명분만은 놓칠 수 없다는 한국인의 명문에 대한 집념의 크기를 엿 볼수 있다. 그러기에 실이 있더라도 명분이 없으면 한국인에게는 가치를 형성하지 못하며 명분에 실울 조화하며 들면 변질이나 희색이니 하는 부정적 대명사로 지탄받는 다.

그만한 명분을 얻으면 그 명분에 응분의 실(實)이 있기 때문에 얻은 것이요 그 만한 실이 있으면 구하지 않아도 명분을 얻는다. 명과 분이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많고 적어서는 안되고 동질동량으로 균형이 잡혔을 때 명분이다. 만약 명보다 분이 모자라면 그것은 실명이 아니라 허명이요 허명을 얻기위해 분을 과남하게 하면 허분이 된다.

최근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을 앞두고 심의위를 개최하면서 학생들과 대학들이 마찰을 빚고 있다. 정부는 동결을 권고하고 있지만 일부 사립대학들은 인상이 불가피 하다며 고집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을 소를 팔아 마련한 학생의 등록금으로 세운 건물이라는 뜻으로 우골탑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소를 팔아서 대학등록금을 대지 못해 인골탑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유가 있다. 최근 30년 동안 소고기 생산자 가격은 3배로 오른 반면 대학등록금은 13배로 뛴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등록금은 1965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34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매년 올랐다.

등록금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대학들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찾은 등록금 협상이 성사돼 학부모들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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