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신의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논어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의 이 말(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못한다)은 총리 후보로 내정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총리후보로 지명된지 21일 만에 후보직에서 물러나면서 사퇴의 변으로 내세워 더욱더 인구에 회자됐다.
당시 김 후보자는 사퇴기자회견에서 이 고사성어를 들며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미덕은 신뢰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신뢰가 없으면 총리직에 임명된다 해도 무슨 일을 앞으로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얼마전 작고한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쓴 에세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 한사람이 도로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서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건너는 것은 힘들고 위험해 곁에 서 있는 사람에게 <길 건너까지 저와 함께 가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아, 그렇게 하지요>라며 쾌히 승낙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건널목을 건넜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시각 장애인이라고 앞을 못 보는데 당신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었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례가 상황은 다르지만 모두 신뢰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한 얘기들이다.
충북에서도 최근 이같은 신뢰의 가치를 새삼 일깨워준 유쾌한 사건이 발생해 눈길을 끌었다.
배추파동이 전국을 휩쓸던 1주일전, 괴산절임배추의 원산지인 괴산군 문광면 광덕 3리 동막동 마을에는 난리가 났다.
당시 배추 한포기에 1만3천원이 넘었는데도 괴산절임배추생산자협의회(회장 김갑수)는 시세의 5분의1에 불과한 2만5천원(8~10포기)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해 온 국민을 경악(?)케 했다.
괴산군 농특산물 쇼핑몰은 밀려는 주문에 곧바로 예약접수가 품절됐고, 현재까지 서비스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인터넷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괴산절임배추'가 하루종일 1~3위에 오르내릴 정도로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급기야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지난 6일 이 마을을 찾아 "소비자를 우선한 판매가격 결정은 괴산절임배추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농민들을 격려할 정도로 괴산절임배추는 이제는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이처럼 괴산절임배추가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뢰가 결정적인 밑거름이 됐다.
그들은 배춧값 파동에도 소비자와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시세의 5분1이라는 '착한가격'을 설정했다.
눈앞에 당장 돈이 보이는데 왜 그들이라고 값을 올려 받고 싶지 않을까 마는 결국은 소비자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먼 장래를 본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결정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피드백을 가져다 주었다. 앞으로의 판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탄탄대로가 열리게 됐고, 애써 돈을 써가면서 홍보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젠 전국적인 명성을 갖게 됐다.
만약 그들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시세대로 배춧값을 받았다면 그들의 손에 그렇게 엄청난 유·무형의 성과가 쥐어질 수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생산 농민들의 현명한 판단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약속이행이 괴산절임배추를 명품 배추의 반열에 올려 놓고, 그들에게 계량할 수 없는 복을 가져다 준 것이다.
신뢰가 인간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지만 얼마나 가치 있고 얼마나 위대한지를 웅변적으로 보여 준 좋은 사례다.
'경영의 신'이라고 하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그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심에 휩싸여 약속을 어긴다면 일시적인 이득은 얻을 수 있을 지 몰라도 결국에는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된다. 약속이 정확하게 지켜졌을 때에만 타인은 물론 나의 목적도 평탄하게 이룰 수 있으며, 이것이 기반이 되어야 올바른 가치관을 통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경영의 신을 만난 적도 없고,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 괴산절임배추마을 농민들의 '유쾌한 기적'에 다시한번 박수를 보내며 가을이 농익는 이 아침에 우리 모두가 말은 쉬워도 이행하기는 쉽지 않은 신뢰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는지.